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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7)-서화백이(52)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내가 서화미술학회에 들어갔을 때는 나보다 1년 먼저 입학한1기생들이 공부하고 있었다.
1기생은 오일영 이용우 이한고 이용걸 등이었다.
나는 소림과 심출 선생에게 빙묵화 와 채색화를 지도 받았다.
대청마루에 엎드려서, 혹은 널찍한 책상에서 공부했다.
선생님들은 학생이 원하는 대로 체법을 일일이 가르쳐줬다. 교재로는 『개자원화보』를 썼다.『개자원화보』 는 중국에서 만든 책인데 화가들의 명소가 실려있다.
산수4권, 인물4권, 화오4권, 사군자4권으로 나누어져 있다.
고론이 씌어있고 그림그리는 방법, 채색등의 기본지식을 기술해 놓았다.
모든짐승의 본도 있다. 산수에는 연섭파·난마파·태호파둥이 있어 산의 모양을 나타 냈다. 난마파은 거친산세, 가말파은 연잎같은 산세를 말함이다.
때로는 자유롭게 사생훈련도 시켰다.
조료생을 위해서는 우향 정대유, 청운 강진희선생이 각체릐 종을 써서 벽에 걸면 학생들이 그것을 보고 썼다.
본은 며칠만큼씩 바꾸어 걸었다.
서화미술회의 교육방법은 사생·모사·복사가 주교육이었다.
어떤때는 「백단팔도」라고 해서 곤장그림 1백8개를 세필로 그리는 연습도 했다.
서화미술회에는 등록된 학생외 에도 많은 청소년들이 드나들었다. 고관대작의 자제들도 많이 와서 서 와 화를 배웠다.
그들은 단지 서화의 교양을 쌓기위해 취미로 나오고 있었다. 모두 옷차림이 깨끗했고 사치스럽게 보였다. 그들은 어느 한 선생님한테 묘나 화를 개인적으로 자유롭게 교수 받을 수가있었다.
당시 동경미술학교에 유학하여 조선청년으로 맨처음 서양화 공부를 시작한 춘곡 고희동도 방학때면 자주 서화미술회에 놀러왔다. 그는 자랑스럽게 서양미술얘기며 유ㅇ그리는 법을 설명하면서 미술회 학생들과 가깝게 어울렸다.
어느 날인가는 내가 인물 그리는 것을 유심히 보시던 소림 선생이 느닷없이『자네, 담뱃대를 물고있는 나를 한번 그려보게』하고 말했다.
나는 소림선생이 시키는대로 담뱃대를 문 선생의 좌상을 그렸다.
선생님은 생각보다 잘 그렸다는 듯이 만족한 표정으로 『내림그림이야,내림그림』 하고는 혼자 중얼거렸다.
마치 신들린 무당처럼 신기운을 받아내린 그림이란 뜻이었다.
소림 선생이 칭찬하고 있을 때 미술협회장인 일당이 순사의 경호를 받으며 나타났다. 일당도 소림선생이 감탄하는 그림을 보더니 나에게 한마디했다.
『화재가 훌륭해. 열심히 공부하게.』가난과 열등감으로 우울하기만 했던 나도 차차 용기와 자신을 갖게되었다.
그러나 미술회에서 돌아오면 끼니가 간데 없는 집안걱정에 풀이 죽어있었다. 급하면 그릇 나부랭이까지 전당포에 들고 나가시는 어머님의 모습을 보고만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나는 공부도 좋지만 우선 먹고 살기 위해 전에 일한 적이 있는 인쇄소며 도장포를 찾아다니느라고 며칠간 결석했다.
하루는 「파고다」 공원 옆을 지나다가 우향 정대유 선생을 만났다. 우향선생은 대뜸 나룰 불잡고 『자네일 때문에 미술회에서 의논이 있었으니 내일은 꼭 나오게』 하고는 신신당부했다.
우향선생은 광화문현판을 쓴 향염 정학교의 아들로 예서·행서에 능했고 순를 잘그리는 분이었다. 뒤에 조선미술전예회에 1회때부터 심사위원을 맡았었다.
우향선생의 말을듣고 이튿날 미술회에 나갔더니 심전 선생이 기다렸다는 둣이 강지문을 열면서 반갑게 맞아들였다. 내가 방에 들어가 앉으니 선생님은 말없이 봉투 하나를 꺼내놓았다.『이거 받게. 듣자하니 자네 집안 형편이 몹시 곤란하다 면서. 며칠전에 자네를 천거해준 김돈성 씨가 자네집 힝편을 말해주어 알았네. 이봉투에는 선샘님들이 자네에게 집안 걱정 말고 열심히 공부하라는 격려금으로 12원이 들어있네. 허니 아무말 말고 받아넣게. 자네는 그림공부만 열심히 하면 돼.
나는 가슴이 몽클했다. 뜨거운 것이 목줄기를 타고 치솟는 느낌이었다.
선샘님들이 이왕직에서 윌급을 받아 제자를 위해 각각 2원씩 떼내놓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너무 감격하여 목이 메었다. 미술회에서 공부를 끝내고 집에 들아와 어머니에게 그돈을 내놓았다. 어머니도 그돈을 밤아들고 눈몰을 흘리셨다.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집안형편이 조금 펴졌다. 전당포에서 그릇도 되찾아오고 쌀말도 장만할수 있었다. 어머니는 그돈으로 내가 학교에 입고다닐 모시 두루마기를 지어주셨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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