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 친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누가 경고 받았나" 화제 만발>
『서정 쇄신이나 부조리 숙정과 관련하여 탈선 행위자에게 서면 경고나 충고를 한 것이 사실이고 용서 못할 의원은 다음 공천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진해 회견 후 공화당에선 착잡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길전식 사무총장은 『그 동안에도 불미스런 일이 있었던 의원에게는 공천이 돌아가지 않았다』면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으나 대부분의 소속 의원은 『누가 경고 친서를 받았는가』고 수소문하면서 귀추를 주목.
특히 친서를 받은 일이 있던 K씨 등이 지난번 유정회 2기 추천에서 탈락한 사례도 있어 의원들의 관심은 더욱 높다.
『경기도 출신 중에 친서를 받은 의원이 많다.』『당무 위원과 국회 상임 위원장을 포함하여 20명 이상이 경고를 받은 것으로 안다.』는 등의 얘기가 나도는 가운데 「친서 화제」는 꼬리를 물고 있다.

<본인이 발설 않는 한 노출 안 돼>
박 대통령의 「경고 친서」는 이제 완전히 그 기능과 권위, 그리고 두려움을 햇빛 아래 드러내놓았다.
그 동안 「경고 친서」는 불미스런 행위를 하거나 재물에 눈을 밝힌 일부 여당 국회 의원들에게 은밀히 전달되어 당사자의 자존심과 명예를 적당히 지켜 주어왔다.
그러나 진해 회견에서 박 대통령의 「경고 친서」는 표면시 되었다.
박 대통령은 『법으로도 다스릴 수 없는 사례에 대해서는 경고 친서를 보내거나 불러다 충고를 주는 수밖에 없다』고 그 대상의 한계를 분명히 했다.
박 대통령의 「경고 친서」는 이런 점에서 법의 테두리를 넘는 정치적 징벌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지난번에 떠들썩했던 인삼 조합 사건에 관련된 것으로 전해진 여당 국회의원에게도 「법으로 걸 수 없기 때문」에 지난달 27일 경고 친서가 보내진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경고 친서」를 받았다고 해서 다음 선거 때 나오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을 밝히고 불미한 행위가 단 한번이라도 용서받지 못할 행위자는 공천에서 탈락시킬 것도 분명히 했다.
박 대통령의 설명으로 미루어 경고 친서는 꼭 어떤 부정을 저질렀을 때만 보내지는 것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예방적인 경고에서부터 법망을 교묘하게 피한 행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발송되는 것 같다.

<"대통령이 편지 보내왔습니다.">
대통령의 친서는 인편으로 당사자에게 전달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극비리에 전달되기 때문에 본인이 발설하지 않는 한 당장에는 알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당 간부들은 어떤 경로로든 친서 전달을 파악하는 것이 보통이고 사후 대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밖에 알려지는 경우가 많다.
한꺼번에 여러 의원에게 친서가 보내질 때는 자연히 소문나기가 쉽지만 세상에 알려 지지 않은 일로 경미한 경고를 받는 경우는 대개 묻혀지게 마련.
어떤 의원은 『대통령으로부터 편지가 왔다』는 비서의 전갈을 받고 기뻐서 가슴이 부풀었다가 경고 내용을 보고는 혼비백산, 안절부절못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경고 친서는 7대 국회 때부터 있었던 것. 군 징발 토지에 대한 보상금 배정과 관련하여 당시 일부 여당 의원이 친서를 받은 것으로 국회 안에 소문나 있었고 호화 주택 시비도 7대 국회 때 있었던 일.
호화 주택 문제로 당시 여당 간부 뿐 아니라 일부 국무위원까지 경고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고 친서는 여당 소속 현역 의원에게만 내리는 것이 보통이고 여당 운영이나 일반 당원에 관련된 문제가 있을 때에는 당 의장에게, 여야 의원에게 관련된 사항일 때에는 국회의장에게 통고 서한이 전달된다.
7대 국회 말 당시 신민당 소속 김세영 의원의 겸직이 문제됐을 때 국회의장 앞으로 겸직에 관한 정부의 의견이 전달됐고 공화당의 기구 축소나 기강 문제가 제기됐을 때는 당총재의 자격으로 이효상 당의장 서리에게 지시 성격의 서한이 왔었다. 이 당의장 서리는 이 서한을 받고 당 간부들과 대책 회의를 여는 것이 관례. 8대 국회 때의 「10·2」 파동이나 남북 공화 당사의 신축 때에는 박 대통령이 직접 당 간부들에게 전화를 걸어 경고했다는 얘기.

<지나치면 사정 기관서 조사>
친서나 충고를 받게되는 행위의 유형은 금전적인 사권 개입에서부터 의원 주변 사람들의 생활 태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국회 교체위 소속 의원들이 철도 열차의 청소 용역을 둘러싸고 일으킨 잡음이라든가 은행 융자를 받도록 압력 (?)을 가한 사례 등이 이권 개입의 전형별 「케이스」.
공화당의 어느 중진 의원 부인이 외국에서 돌아오다 김포 세관에서 관세 부과를 둘러싸고 시비가 생기자 남편의 이름을 댔고 세관원은 더욱 철저하게 규정대로 세금을 물려 이를 항의하고 다닌 의원이 구설수의 대상이 된 일이라든가 『××의원의 딸이 「롤렉스」 시계를 차고 다닌다』는 소문이 돌아 차던 시계를 바꾸게 했다는 얘기 등이 의원 주변 인물의 처신과 관련된 예.
농장 혹은 주택 문제로 친서나 충고를 받거나 심지어 사정 기관의 조사를 받은 의원도 있다는 얘기. 공화당의 어느 재선의원은 최근 지역구에 있는 농장에 주택을 지은 것이 문제가 되어 사정 기관의 내사를 받았고 유정회의 어느 의원은 집을 지으면서 한밤중에 「덤프·트럭」의 소리를 요란하게 내 인근 주민의 투서를 받은 일도 있다.
선거구에서 농장을 경영하고 있는 모 중진 의원은 각종 토양 재배 실험을 하면서 공공 기관을 이용한 것이 문제가 되어 친서를 받았고 다른 중진 의원은 서울 근교에 부동산을 매입한 것이 친서를 받은 계기였다는 것. 외국 여행시에 지역 기관장으로부터 약간의 여비를 받은 의원, 지역구의 인사 이동에 관여하여 물의를 일으킨 의원 등도 경고 대상.
이성을 잃을 정도의 주정을 한다거나 당 간부를 뒤편에서 성토한 것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된 경우도 있다.

<"야당 의원에게도 경고 가능">
야당에서도 경고 친서에 대해 비상한 관심.
야당 의원들은 우선 경고 친서가 야당 의원에게도 보내진 사례가 있는가에 대해 관심을 집중하고 있으나 대체로 『그런 일은 없는 것 같다.』는 것이 중론.
이중재·한병채 의원 등은 『대통령이 여당 총재의 입장에서 여당 의원들에게까지는 경고하는 것은 좋지만 남의 당인 야당 의원들에게까지는 경고장을 보낼 수는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 의원은 야당 의원에게 비위가 있을 경우 경고 친서의 형식이 아닌 우회적인 「경고」는 있을 수도 있다고 추측.
무소속의 양정규 의원도 야당이나 무소속 의원에 대한 경고 친서 발송은 『있을 수도 없고 있지도 않은 얘기』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충환 총재 대행의 견해는 이와 대조적.
이 대행은 『대통령이 여당 총재의 입장에서가 검찰권을 가진 입장에서 야당 의원에게도 경고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비위가 있는 야당 의원에 대해 「입건해야겠지만 사안이 경미하므로, 또는 특별 배려로 경고한다.」는 형식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것.
경고 친서의 의의에 대해 황명수 의원 같은 이는 ①서정 쇄신용 ②경고용 ③청소용 (공천 탈락 같은 것) 등의 다목적이 있는 것 같다고 풀이했으나 이 대행은 『말단 공무원은 점심 한 그릇 얻어먹고도 파면을 당하는데 고위층에 대해서는 경고장 하나로 끝난다면 불가사의한 일』이라는 엄벌주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정치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