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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unday] 중국에 대신 사과합니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70호 31면

아파트 현관 밑 틈으로 쪽지가 날아든다.

‘우리 집 유리창이 깨졌다. 당신네 집 아들이 그 시간에 집 앞에서 공 놀이를 했으니 알아보고 필요한 조치를 해주기 바란다. 우리도 누가 그랬는지 더 확인해보겠다.’

아이를 불러다 물어보니 펄쩍 뛰며 ‘범인’이 아니라고 한다. 집안은 시끄러워졌고 옆에 있던 삼촌, 고모도 한마디씩 거든다. “그 집은 원래 남에게 덮어씌우기 선수다.” “수준 낮은 집안이라서 엉뚱한 소리를 잘한다.” 성토의 소리는 옆집에 들릴 만큼 크다. 그 집 안에서 발견된 공이 아이가 가지고 놀던 것인지 살펴보는 등의 ‘진상조사’는 뒷전으로 밀린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 아이 친구가 실토를 했다. 우리 집 아이와 함께 놀다가 유리창을 깼다고. 그 집으로 넘어 들어간 공이 아이가 가지고 놀던 것임도 확인됐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꼭 맞는 것은 아닐는지 모르지만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 조작’ 사건에 대한 국가정보원 등 관련 기관과 일부 여당 의원의 행태를 지켜보며 떠올린 비유적 상황이다.

2월 13일 주한 중국대사관은 유우성(중국명 류자강)씨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법원에 낸 세 종류의 문서가 위조된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정부기관이 발급한 것으로 돼 있는 문서가 가짜라는 것이었다. 한국 법무부 장관과 외교부 장관은 즉각 “정식 외교 경로를 통해 발급받은 문서”라고 주장했다. 국정원도 “해당 문서는 사실과 부합한다”고 반박했다.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에 유감을 표한다”고도 했다.

정치인들은 한발 더 나갔다.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이 사건을 “중국 공안당국의 방첩사건”으로 규정했다. 중국 정부가 문서를 내준 협조자를 간첩으로 처벌하기 위해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는 중국대사관과 유씨 측의 내통 가능성도 제기했다. 같은 당 김진태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선진국이 안 된 국가들에서 정부기관이 발행한 문서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발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의 실체는 상당 부분 드러났다. 국정원 간부가 정보원을 시켜 문서를 위조했음이 검찰 수사로 밝혀졌다. 현재 남은 것은 국정원의 어느 선까지 개입했느냐 정도다. 그런데도 중국에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인 이들은 꿀 먹은 벙어리다. 국정원은 지난달 10일 “당혹스럽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린다”고 구렁이 담 넘듯 입장을 밝혔다. 중국 정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아무리 이웃이 못 미덥고 팔이 자꾸 안으로 굽는다 해도 예의는 지켰어야 했다. 이왕 결례를 범했다면 정중하게 사과해야 한다. 우선 그들을 대신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중국에 미안한 마음을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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