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기 추적 못 하게 부품 모델번호 고의 훼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최근 경기도 파주와 백령도, 강원도 삼척에서 각각 발견된 3대의 소형 무인항공기는 북한군이 정찰 목적으로 날려 보낸 것이 확실하다고 국방부가 11일 발표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무인기 합동조사 중간발표에서 “무인기의 비행체 특성과 탑재장비에 대한 합동조사 결과 북한의 소행이 확실시되는 정황 근거가 다수 발견됐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파주에서 발견된 무인기는 (파주와 서울을 잇는) 1번 국도상을 북에서 남으로 이동해 서울에서 7~9초 간격으로 촬영한 뒤 유턴해 북쪽으로 이동했다”며 “백령도 무인기는 소청도에서 대청도 방향으로 다수의 군사시설이 포함된 상공을 이동하면서 촬영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청와대와 군사시설을 촬영하기 위해 북에서 남으로, 또 서북 도서지역을 비행했다는 뜻이다.

 국방부는 파주·삼척 무인기와 백령도 무인기의 연료통이 각각 4.7L, 5L인 점을 고려해 항속거리를 180~300여㎞로 추정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올 수 없다는 설명이다. 김 대변인은 “3대의 무인기 도색 상태가 모두 똑같고 2012년 4월 15일 김일성 생일 열병식과 지난해 3월 25일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1501군부대 방문 때 북한이 공개한 무인공격기(무인타격기)와 매우 흡사하다”고 강조했다.

 무인기는 한국(메모리, 서보모터)과 미국(자동조종 보드, GPS 안테나), 일본(자이로센서, 수신기, 카메라), 중국(CPU 보드, 낙하산), 체코(엔진), 스위스(GPS 보드) 등의 상용 부품으로 제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부품 내부의 금속판에는 제조사 등이 적혀 있었지만 추적을 못하도록 무인기를 제작할 때 고의로 훼손한 사실도 드러났다. 저출력 FM 송신기와 중앙처리장치(CPU) 표면의 모델 번호도 긁어냈다.

 국방부는 이번 수사 과정에서 GPS 복귀 좌표가 입력됐을 것으로 보이는 CPU를 분석하지 않았다. 이륙 전 미리 입력한 좌표를 분석하면 출발지와 비행한 곳을 확인할 수 있으나 비전문가들이 CPU를 잘못 손댔다가 이륙 지점인 북한 지역의 좌표가 훼손될 것을 우려한 까닭이다.

 국방부는 중간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미 과학조사전담팀을 꾸려 추가조사를 진행키로 했다. 김 대변인은 “전담팀이 촬영된 사진과 CPU 내장 데이터 분석, 비행 경로 검증 등의 기술 분석을 실시해 무인기의 발진 지점을 찾아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청래 “북한 아닐 가능성” 논란=이날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의원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무인기에 대해 “북한에서 보낸 게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해 논란이 예상된다.

정 의원은 “(무인기에 적힌 글자체는) 우리 아래아 한글로 북한 무인기에 왜 아래아 서체가 붙어 있느냐”며 “북한 무기엔 주체 몇 년이라고 쓰는데 그것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북한 무인기라고 소동을 벌인 것에 대해 누군가 응당한 책임을 질 날이 올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제기하신 의혹들이 북한 무인기가 아니라는 증거는 아니다”고 답했다. 새누리당 박대출 대변인은 “지금 필요한 것은 의혹을 부풀리는 게 아니라 과학기술적 조사를 더 지켜보고 최종 결론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밝혔다.

정용수·유성운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