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질 탈출' 한국인 귀국 러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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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 호흡기증후군(SARS)'으로 알려진 괴질이 홍콩을 중심으로 동남아 전역에 무차별 확산함에 따라 홍콩 교민.상사원 가족들이 긴급 대피하고 있다.

홍콩 주재 신한.하나.우리은행 지점과 제일제당.동양화학 지사 등은 28일 직원 가족들을 우선 귀국시키기로 했으며 현대 계열사들도 조만간 가족 대피령을 내릴 방침이다.

홍콩 한국여행사 사장 김범수씨는 "지난 26일부터 한국행 항공권 구입 주문이 폭주하고 있다"면서 "이틀새 수백명이 귀국했다"고 전했다.

괴질로 인한 희생자가 처음 발생한지 보름여 만에 감염자가 3백67명, 사망자가 11명에 이르면서 교민 사회뿐 아니라 홍콩 전체가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졌다.

거리의 행인 중 절반은 마스크를 했으며 지하철.버스에서 기침이나 재채기를 하면 주위 사람들이 소스라치게 놀라 자리를 피한다. 약국은 '괴질 예방약'을 사려는 사람들로 초만원을 이루는 반면 거리엔 초저녁부터 인적이 끊긴다.

괴질의 치료 대책이 나오지 못하는 가운데 상황이 계속 악화되자 둥젠화(董建華) 행정수반은 지난 27일 오후 초.중.고교생 1백만명에 대한 임시 휴교령과 괴질 환자와 접촉한 1천여명에 대한 강제 격리 등을 골자로 하는 긴급조치를 발동했다.

이에 대해 명보(明報)등 홍콩 언론은 "뒷북 대응"이라며 "싱가포르처럼 2차 괴질 사망자가 발생하자마자 긴급조치를 취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번 괴질은 중국에서 시작, 홍콩.싱가포르.대만으로 확산돼 28일까지 중화권에서 전체 감염자의 92%인 1천2백74명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병원체의 발원지인 중국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어 사태 악화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많다.

중국 정부는 지난달 중순 광둥(廣東)성에서 괴질 사태가 확산되자 "3백5명이 감염돼 5명이 숨졌다"고 밝힌 뒤 추가 자료를 내놓지 않다가 지난 26일에 세계보건기구와 각국 정부의 압력이 가중되자 "7백92명이 감염돼 31명이 사망했다"고 공개했다.

일부 홍콩 의료기관에선 새로 교체된 후진타오(胡錦濤) 정부의 이미지 실추를 우려해 중국 당국이 괴질의 실상을 은폐하고 있는 게 아니냐며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홍콩=이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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