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서 막힌 '규제 완화' … 1100일째 잠자는 법안 67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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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는 암덩어리다.”

 박근혜 대통령이 ‘암덩어리’란 표현까지 동원해 규제개혁 의지를 밝힌 지 꼭 한 달이다. 하지만 국회에 방치된 정부 발의 규제개혁 법안이 67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 규제개혁 의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10일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18대 국회(2008년 5월 말~2012년 5월 말)에서 규제완화를 위해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법률안은 총 102건이다. 이 가운데 35건은 19대 국회(2012년 5월 말~2016년 5월 말)로 넘겨졌다. 하지만 나머지 67건의 법률안은 1100여 일째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폐기 또는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방치된 주요 법률엔 “규제를 풀겠다”며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 직접 올린 먹는샘물 제조업 허가, 도시가스 청전사업 허가 관련 등 23건도 포함돼 있었다. 전경련은 “규제완화를 공언한 정부조차도 국회에 법안을 제출하는 데 그쳤을 뿐 끝까지 관련법을 챙기는 부처가 없었단 뜻”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무관심으로 신(新)시장의 기회를 놓치고 있는 곳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위치정보사업(LBS )이다. 현행 위치정보의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은 사람과 건물 등의 사물을 구분하지 않고 위치정보 이용에 제한을 두고 있다. 위치정보를 활용해 사업을 하기 위해선 ‘신고’가 아니라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진입 규제가 있는 데다 ‘사람의 위치정보’와 ‘사물 위치정보’에 대한 기준이 명확지 않아 벤처기업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김태윤 전경련 미래산업팀장은 “세계 위치기반 서비스 시장은 2008년 19억3800만 달러에서 올해 82억6300만 달러로 급성장하는 데 반해 우리 기업들은 진입 규제에 발이 묶여 관련 사업을 벌이고 있는 곳을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발의한 이 법안은 19대 국회에 재상정돼 있다.

 공공과 민간 투자를 늘려 지역개발을 계획 수립 단계부터 줄여 효율적으로 하자는 취지로 정부가 2011년 9월에 내놨던 ‘지역개발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 역시 잠자고 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정부가 2012년 7월에 내놓은 ‘서비스 산업 발전법’도 같은 처지다.

 국회의원들이 직접 ‘규제를 풀자’며 내놓은 법안들도 마찬가지다. ‘이한구 법’으로 알려진 국회법 일부 개정안은 지난해 9월 12일 제안됐다. 국회에 규제를 신설하거나 강화하는 법안을 제출하게 되면 사전에 ‘규제영향평가’를 하자는 취지로 발의됐지만 지난해 12월 13일 소관위 상정에 그쳤다. 이 법을 제안했던 이한구(새누리당·대구 수성구갑) 의원은 “최근 대통령이 규제개혁을 강조하면서 관심을 받았던 것일 뿐 법 제안 당시엔 우리 당에서조차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했다.

 해외에 진출했다 국내로 다시 돌아오는 기업(유턴 기업)들에 대해 자유무역지역에 입주 자격을 주자는 이강후(새누리당·강원 원주시을) 의원 발의안, 제주에선 면세점 구입 한도를 1500달러로 높여 경제를 활성화해보자고 제안했던 이낙연(새정치민주연합·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군) 의원의 법안도 마찬가지로 소관위에만 올랐다. 국민에게 ‘비현실적’이라고 지적을 받았던 현행 400달러 기준의 면세 한도를 800달러로 높이자는 심윤조(새누리당·서울 강남구갑) 의원의 관세법 일부 개정안도 4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면 올 9월 정기국회까지 기다려야 할 처지다.

김현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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