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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의 계절, 여론조사 조작부터 막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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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 위원

상향식 국민경선이 도입되면서 여당은 물론 야당에서도 여론조사는 공천의 필수 요건이 되었다. 그 반영 비율은 지역에 따라 최소 20%에서 최대 100%까지 이른다. 여론조사 의존율이 높아지다 보니 여론조작의 유혹도 커지고, 실제 범죄 사례도 증가 추세다. 범죄 유형은 착신전환, 허위사실 유포 등 다양하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휴면 전화번호 2000개를 재개통해 민주당 완주군수 공천 여론조사를 방해한 안모씨는 징역 2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2012년 총선에서 서울 관악을 후보단일화 여론조사 경선에서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의 보좌진은 일반전화 190대를 개통해 휴대전화로 착신 전환했다가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착신전환을 악용한 대표적 사례다.

 착신 전환은 불순한 의도가 있는 한 사람이 수백~수천의 표심인 양 여론을 왜곡할뿐더러 성별·연령대별 비율까지 조작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당선자를 바꿀 수 있는 중대 범죄인 것이다. 선관위가 대규모 인원을 투입해 단속하는 이유다.

 허위사실 유포 사례도 많다. 2012년 대선 당시 민주당 선대위 관계자가 ‘새누리당 부설 여의도연구소 조사 결과, 박(43.8%) : 문(46.3%)’라는 내용의 허위 사실을 SNS로 유포해 많은 유권자를 혼란에 빠뜨렸다.

 새누리당도 마찬가지다. ‘공천=당선’인 영남권에서 새누리당 모 후보 캠프 관계자가 지인들에게 문자로 보낸 여의도연구원(옛 여의도연구소) 여론조사 결과가 허위로 확인되었다. 허위사실 공표 또한 실제 민심을 왜곡하는 중대 범죄다. 이를 막기 위해 최근 중앙과 시도 단위로 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가 구성돼 여론조사 설계 과정부터 공표, 보도 과정까지를 면밀히 감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공천이 곧 당선인 영·호남 지역에서 여론조작의 유혹은 가시질 않고 있어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우선 착신전환 폐해는 향후 휴대전화 여론조사 관련 법안이 통과되면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다.

 현재는 휴대전화 조사를 기초단체 단위별로 실시하기 어려운 게 함정이다. 유선전화로만 경선이 이뤄질 수밖에 없고, 여기에서 불법 착신전환 폐해가 발생한다. 왜 기초단체 단위의 휴대전화 조사가 어려울까. 가령 전국의 기초단체 243개 가운데 종로구청장 선거 여론조사를 떠올려 보자. 현재는 휴대전화 명부가 없어 휴대전화 번호를 무작위로 발생시켜 조사해야 한다. 조사 대상 중에서 종로구민은 243분의 1밖에 안 된다. 그런 구민을 상당부분 확보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낭비된다.

 휴대전화 여론조사 법안이 통과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여론조사 기관이 해당부처, 예를 들어 방송통신위원회가 이동통신사로부터 제공받은 해당 기초단체 유권자들의 휴대전화 번호를 안심번호(예: 0505-500-1234) 형태로 필요한 만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번호는 조사 후 소멸된다. 그러니 개인정보도 보호할 수 있고, 유권자 개인에게 바로 전화가 발신되기 때문에 유선전화 착신전환 과정도 필요 없게 된다. 실제 지난 2012년 대선 새누리당 경선 당시 선거인단의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실제 휴대전화 번호가 아닌 안심번호를 후보 측에 제공해 성공적으로 전당대회를 치른 적이 있다.

 SNS를 통해서 익명으로 퍼지는 허위사실 유포는 관계 당국에 의해 즉시 파악되기 어렵고, 한번 퍼지면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강력한 처벌이 요구된다. 아직 처벌 수위가 약하거나 때로는 무죄 판결이 나올 때도 있어 쉽게 없어지지 않고 있다. 앞서 언급한, 지난 대선 당시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소 조사 결과를 왜곡하여 유포한 민주당 관계자는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 받았으나 2심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유는 “문자메시지 내용이 허위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박근혜 후보를 낙선시킬 목적으로 문자를 발송했다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판례는 허위사실 유포자들에게 여론조작의 유혹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입법부 차원의 법 개정과 아울러, 사법부의 강한 처벌 의지가 필요하다.

 여론조사는 이제 대한민국에서는 입법, 사법, 행정 그리고 언론에 이어 언필칭 권력의 제5부로까지 일컬어질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되었다. 문제는 진입장벽이 없어 누구나 신고만 하면 회사를 설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여론조사 방법은 기본적으로 오차를 내포한지라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부실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 이런 장치가 없으면 여론조사가 여론왜곡으로 이어져 선거민주주의의 본질을 위협할 수 있다.

 당연히 우리 사회가 선거 여론조사와 관련해 적정 기준과 환경, 그리고 활용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할 때다. 그래야 유권자들도 여론조사의 결과를 신뢰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권력의 5부에 의해 민주주의가 훼손될 수 있다. 물론 여론조사 회사들도 권한만큼 책임에 충실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