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분」없는 싱거운 대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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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 민주당대통령후보「카터」씨가 전당대회참석을 위해서 「뉴요크」로 떠나던 날 공항으로 가는 도중에 그는 차를 세우고 잡화상으로 뛰어들어가 전화를 걸었다. 그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어머니「릴리언」여사를 모셔오는 것을 깜빡 잊었다. 「카터」의 전화를 받은「릴리언」여사는 시속 1백「마일」로 차를 달려 가족과 합류했다.
그러나 「조지아」주의 「플레인즈」를 떠날 때의 「카터」의 흥분과는 대조적으로 민주당전당대회는 「드라머」가 없고 흥분이 없는 유례없이 싱거운 전당대회다. 사실상 대통령후보로 확정된「카터」는 관례에 따라서 전당대회 장소에 나타나지 않고 거기서 20「블록」떨어진 「호텔」방에서 「텔리비젼」으로 자기의 「대관식」광경을 지켜보고 있고 조연들끼리 모여「닉슨」-「포드」시대를 힐난하면서 전당대회의 막을 올렸다.
거금 1천3백만「달러」를 쓰면서 전당대회를 중계하고 있는 3개 주요TV방송국들은 전당대회가 활기를 잃자 귀빈석의 「카터」가족에게 집중적으로 「카메라」를 비췄다. 「카터」 의 8세난 딸「에이미」가 몇 차례「인터뷰」를 당하고 여걸로 알려진 모친「릴리언·카터」와 부인「로잘린·카터」가 계속 등장했다.
주최측은 대회에 활기를 넣어보려고 15분 짜리「코미디」영화까지 상영했다.
CBS-TV의 인기「코미디」물 「마리·테일러·무어·쇼」에 나오는 「에드워드·애쉬너」가 나와서 정치「코미디」를 엮었지만 대의원들은 관심을 쏟지 않았다.
귀빈석은 절반밖에 차지 않았다. 이렇게 산만한 대회분위기의 희생자는 「존·글렌」상원의원.
부통령후보로 가장 유력하다고 보도된「글렌」은 기조연설을 했다. 그의 기조연설은 「카터」로 하여금 「글렌」의 정치역량을 시험하는 『구술 시험』이라고 모두들 알고 있었다.
그러나 「글렌」은 불행하게도 산만한 분위기 때문에 청중을 압도하지 못했다. CBS방송의 「에릭·세버레이드」를 위시한「업저버」들은 「글렌」의 연설이 인상적이 아니라는 점잖은 표현의 논평을 했지만 그들이 의미하는 것은 「글렌」이 『구술시험』에 낙방했다는 것이다.
「글렌」의 실패를 한층 돋보이게 만든 것은 「텍서스」출신 흑인여자하원의원「바버러·조던」의 기조연설이 이날 밤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장내를 흥분시킨 것이다.
「조던」은 하원법사위소속으로 「닉슨」탄핵 때 이미 전국적인 명성을 떨친 의회의 여걸.
육중한 체구에 또렷한 목소리로 뿜어내는 열변은 그보다 앞서 한「글렌」의 연설을 전주곡 비슷하게 만들어 버렸다.
대의원들은 「조던」이 등단하자, 연설이 시작도 되기 전부터 갈채를 보냈다.
「조던」은 이 나라 전당대회사장 여성으로서, 그리고 흑인으로서는 첫 기조 연설자가 된 것이다. 「조던」은 1844년 민주당전당대회가 시작된 이래 이 전당대회가 가장 중요하고 특별하다고 말하고 그 이유는 「바버러·조던」이 기조연설자이기 때문』이라고 말문을 열어 장내를 열광시켰다. 「조던」이 『내가 노예가 되기를 원치 않았던 것처럼 나는 주인이 되기를 원치도 않는다』라는 말로 연설을 마친 것이 이날 밤 전당대회의 절정을 장식했다. 『우리는 「바버러」를 원한다』는 고함이 박수에 섞여 나왔다.
이날 밤의 전당대회는 민주당의 주도권이 동북부 진보파의 손에서 떠났음을 입증했다.
전당대회의 주인공은 남부출신「카터」, 2명의 기조 연설자는 중서부의 「글렌」과 「텍서스」출신의 흑인여성.
「험프리」는 귀빈석에 앉아 「쇼」를 방관하고 있었다. 「험프리」처럼 적어도 이날 밤은 모든 진보라들이 다음 대통령후보를 뽑는 행사의 외각에 밀려나 있었다. 이날 밤 현재 「머스키」상원의원이 「카터」의 「러닝·메이트」로 확정된 듯한 공기가 대회장을 맴돈 것이 진보파의 존재를 확인하는 유일한 징조였다. 「카터」후보는 자신이 남부출신이고 진보파들의 입장에서 보면 보수적이고 거기다가 침례교신자라 진보파와 「카톨릭」신자인 「머스키」에게 기울고 있다고 생각된다. 동북부의 공업지대에서 압도적인 「머스키」의 인기가 「카터」에게는 아쉽기 때문이다. 13일 대회의 「스타」는 「험프리」상원의원. 의장의 소개로 「험프리」등단하자 기립 박수는 대회진행에 차질을 줄만큼 길게 계속되었다. 「험프리」의 연설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박수는 계속 터졌다.
「호텔」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는 「카터」의 간담이 서늘했을지도 모른다.
「험프리」가 연설을 하고 있을 때「카메라」의 초점을 「험프리」에게서 간간이 뺏은 사람은 「재클린·케네디·오나시스」여사. 「재키」는 20대의 조카를 동반하고 입장하여 귀빈석에 앉았다. 「험프리」는 연설에서 「워터게이트」사전을 들춰내어 「포드」와 「닉슨」행정부를 세차게 공격했는데 그가 『공화당친구들이 「프랭클린」「윌슨」「루스벨트」「트루먼」「케네디」「존슨」의 유지를 거부하고 있다』고 말하자 「재키」는 요란하게 박수를 쳤다. 【워싱턴=김영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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