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5)|「피아트」차는 성모의 둘째 아들?|로마=박중희 특파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신은 죽었다.』「로마」의 공중 변소, 누가 담벼락에 이렇게 낙서를 해놓았다. 그 바로 밑에다가 또 누군가가 덧 붙여 써 놓았다. 『걱정 할 것 없다. 성모 「마리아」는 「피아트」 라는 둘째 아들을 낳으셨다.』 그럴듯한 얘기이기도 하다고 느꼈다. 자동차 한 대쯤은 가져야 사람 축에 드는 것으로 여기게끔 됐으니까. 한때 예수를 믿지 않으면 사람 대접받기 어려웠던 것처럼. 하긴 그전 여기서만은 아니다.
자동차 또는 그것이 상징해 온 물질 문명·소비 문명이 신의 자리를 차지해 온건 어디서나 벌써부터 있어온 일이다. 그래서 워낙 거룩한 신은 세상을 뗘나셨다고들 해왔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그의 수도 「로마」에 법왕을 모시고 있는 나라다. 그리고 지난 30년 동안 줄곧 이 나라를 통치해 온 여당 기민당의 정신적 지주 또한 「가톨리시즘」에 있었다. 그런대도 여기서도 신은 또 한번 「비아·돌로로사」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간거리)를 비틀거리며 걸어가고 계신다는 것일까?
「바실리카·디·산·파트로니오」. 구주 최고의 대학이 있는 「볼로냐」가 자랑하는 6백년 묵은 아름다운 성당이다. 『이 성당을 위해 추렴해주십시오]
김치 독 만한 추렴함 위에 걸린 이런 권고 판 속의 「성당」자를 누군가가 먹칠로 지워 「POVERI」 (빈자)라고 갈아 써놓았다. 그것이 벌써 시간이 꽤 된 것 같은데도 누구하나 손댐이 없이 그대로 방치 돼 있다.
낙서는 성당 속에까지 기어들어 도도한 기염을 토한다.
교권적 권위의 사양. 그것을 지난해 정치적 파탄으로까지 번진 낙태·이혼 문제 등에서 보여진 것 같은 교도의 「강직성」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을 「이탈리아」에서는 자주 만난다. 그런 설명이 아주 터무니없을 것은 없다. 이혼이건 낙태 건 그건 벌써부터 현실적으로 벌어져온 하나의 사회적 실상이다. 가난도 물론 있다. 그리고 거기엔 자비 어린 동정이나 이해의 여지도 있다. 그래서 정통적 고고가 중생의 동반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 일게다.
그러나 아무래도 얘기는 거기서 끝나야 할 것으론 왠지 여겨지기 어려워진다. 소비욕이 자동차라는 엄청난 마력을 타고 고속도로를 치달린다. 그 뒤로 충족이란 것이 가랑이가 찢어져라 뒤쫓는다. 간격이 벌어진다. 그러면 인간들은 이렇게 외친다-「나는 왜 이렇게 가난한가!」라고 어느 날 저녁, 한때의 창부들이 「호텔」로 몰려 왔었다. 그들은 죄다 「피아트」 자가용차를 타고 왔다. 「피아트」 (FIAT) 란 원래 「신의 명령」이라는 뜻이 있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