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 육성의 책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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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친권자나 후견인이 양육의 책임을 다 하지 못했을 때, 도덕적으로는 물론 법적 제재까지도 모면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이치는 비단 자연인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국가·지방 자치 단체의 책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우리 나라 사학들에 대한 보호 육성의 의무를 법적으로 지고 있는 국가나 지방 자치 단체들이 이 같은 의무를 이행하기는커녕 도리어 불합리하고 일방적인 간섭만으로써 그 사학들이 존폐의 기로에 도달했다고 비명을 올리고 있다면 이는 결코 작은 일일 수는 없다.
우리 나라 사학들은 법에 의해 국공립 교육 기관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존재 의의를 인정받은 기관들이며 국가는 당연히 그 보호 육성에 관한 책임을 지게 돼 있다.
더군다나 중등 교육의 경우 우리 나라 사립 중·고교는 그 학교 교수에 있어서나 학생 수에 있어 국공립을 능가하는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함으로써 이들을 제쳐놓고 이 나라의 중등교육은 논하기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그런데도 바로 그러한 사립 중·고교들이 이제 교직원들에 대해 임박한 7월분 봉급마저 지불하지 못할 만큼 심각한 재정난에 빠져 있고, 더군다나 그 책임이 전적으로 당국에 있다면 어찌 하겠는가.
7일 한국 사학 재단 연합회의 대표 4백여명이 모여 7월분 봉급 전액의 국고 보조를 요구하기에 이른 것은 마치 숨 넘어 가는 어린이가 그 양육 책임을 지닌 친권자에게 생명을 구걸하는 것 같은 절박감마저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결의한 10개 사항의 건의안은 이 같은 절박감에서 나온 사학 재정난 해소를 위한 긴급 동의라 하기보다는 도리어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면밀한 연구의 결과라는 점에서 공감을 표시할만한 것이다.
당국으로서는 이제 예산 사정 등 핑계를 내세워 또다시 실임을 회피할 계기가 아님을 통감해야 할 것이다. 이 나라 중등 교육의 일시 중단을 방관하겠다면 또 모르되, 그렇지 않은 이상 결자 해지로 이번 만큼은 당국이 책임 있는 응급 조치를 취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사태가 이처럼 긴박하게 된데 대한 당국의 책임을 묻는 것은 차라리 다음으로 미룰 수도 있다. 수입원을 묶어 놓은 채 당국이 일방적으로 지시한 과도한 봉급 일률 인상 조치 때문에 올해에만도 총 2백51억여원의 재정 적자를 사립 중·고교에 강요하게 한 사태는 차라리 2학기 이후 수업료의 대폭 인상과 일부 국고 보조금으로 해결 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으로써도 사태가 완전히 풀릴 수는 없다는데 문제의 핵심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법정 학교 전 입금 확보 능력이 전무하거나 거의 불가능한 재단이 74·6%요, 1년간 재산수익금 총액이 전무하거나 1백만원 이하인 재단이 57·2%인데다가 97·l% 이상의 학교들이 그 경상비의 85% 이상을 온통 인건비로만 지출하고 있는 것이 이 나라 사립 중·고교의 적나라한 실태가 아닌가.
이 같은 실태 하에 만일 재정난 해소를 위한 근본 대책이 없다면 올해와 같은 학기 도중 봉급 재원 고갈 현상의 재연은 물론이요, 끝없는 악 순환적 공납금 인상의 되풀이와, 사학 교육의 계속적인 질 저하 등 온갖 사학 부조리의 심화를 막을 길은 없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사학 재단 연합회 측이 이웃 일본과 자유중국의 실례를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①사학에 대한 각종 세금의 감면 조치 ②사학 경영비 국고 보조의 제도화 ③사학 금고 설치 ④사립 교원 연금법의 적용 대상 확대 ⑤사립 고교만의 경쟁 입시 제도 부활 ⑥사립학 진흥 금고법 제정 ⑦사학 교원 인사 관리 제도 개선 등의 건의는 평소부터 본난이 되풀이 주장한 바이기도 하다. 이것들은 사학 보호의 책임 완수를 위해서도 가능하고 또 최소한의 필요 조치임을 지적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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