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안동 도산|이가원 <국문학·연세대 교수·안동 출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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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태백산 나린 용이 영지 산이 높아서라. 황지로 솟은 물이 낙천이 맑아서라. 일구 도산이요 그 곁에 명승지라. 오흡다 우리 선생 이 곳에 장수하와 당년에 장구소요 후세에 조두소라.』
이 글은 염와 조성신이 읊은 「도산 별곡」의 한 구절이다.
도산 서원은 옛 예안, 지금의 안동에 위치하여 우리 나라 여러 서원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명승지이다. 퇴계 선생의 당일에는 친히 기거하시면서 강학 하던 도산 서당과 제자들이 독서하던 농운정사가 있었던 것이 그 뒤에 서원이 창설되었으므로 이제 이로서는 총칭 도산 서원이라 한다.
선생은 그 만년에 『도산 잡영』과 아울러 「기」를 지어 도산의 전경을 상세히 기록한 바 있었다. 『도산 서당』으로부터 『부용봉』에 이르기까지 칠언십팔절과 『몽천』에서『교동』 에 이르기까지 오언이십육절의 한시를 읊었다. 또 그 「기 」중에서 산수의 지악과 학문의 천취를 끼침이 없이 서술하였고 또 한·한혼철인 『도산 십이곡』을 읊어 그「지」와 「학」 을 말하였다.
천운대 돌아들어 완악재자야한듸
만권 생애로 악사 무궁하여라
이 중에 왕래 풍류를 잃어 무슴하료

<십이곡 중 7곡>
이 시조 한수를 읊어서도 그 신경을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밖에 도산에 대하여 읊은 선생의 시가 몇 10편 「문집」중에 실려 있고, 또 판문한 저자의 금영으로서 학봉 김성일 선생의 『천대봉황하처거 벽오총죽자년년』을 비롯하여 어언 4백년 사이에 수많은 작품이 그들 「문집」중에 실려 있었다.
또 도산이 화공의 신품으로 그려진 것은 벌써 명종 때에 『명화 도산』에 비롯되었고, 그 뒤를 이어서 수많은 작가의 손에 묘사되었으리라 생각된다. 필자의 과문으로서도 겸재 정선의 2종, 표암 강세황과 무명씨의 것이 각 1종과 필자의 종숙부 양전 이상호공의 1종을 목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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