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코란」의 장막에 가린 「제다」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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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별빛이 찬란한 밤에 항구 도시 「제다」 시내에서 홍해의 바닷가로 나가 산책을 했다.
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홍해의 바닷물을 갈라놓고 건너가는 「출애급기」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어둠 속에서 검게 보이는 홍해의 지평선은 고대에의 무한한 향수를 자아낸다. 더구나 「아라비아」의 밤하늘이 이토록 옛스러우니 옛날로 돌아가는 것 같다.
이렇듯 고마운 여행을 하면서도 아쉬운 것이 하나 있었다. 내가 그전부터 그리던 이「제다」 근처의 성지 「메카」를 들르지 못하는 것이다. 이교도는 절대로 「메카」의 심장인「카바」 신전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 같아서는 지금 당장 「이슬람」교로 개종하여 허가를 얻어 「메카」로 가고 싶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크나 큰 「아라비아」왕도의 80%를 차지하는 가장 큰 「이슬람」왕국이다.
「라디오」「텔리비젼」 방송에서도 고전 음악은 물론이고 더구나 퇴폐적인 음악을 일체 들려주지 않고 종교의 「프로그램」이 거의 차지하고 있다.
이 「제다」시는 중산 계급이 거의 없으며 상류 계급과 하류 계급의 두 계층으로 나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오막살이집이 거의 없고 으리으리한 저택들인데 가난한 사람은 돈 많은 이런 집에서 머슴 노릇을 하며 살고 있다.
이 나라에서는 빈부의 차가 어쩔 수 없는 숙명인지 모른다. 「이슬람」교의 성전 「코란」에서는 노래를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오랜 전통 속에서 계급 의식에 대한 비판은 아랑곳없이 「알라」신의 뜻으로 생각하고 살고 있는가 보다.
지금 온 세계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갈등으로 날카로운 대립 의식을 갖고 있지만 이 나라는 「이슬람」교 중에서도 가장 엄격한 「와하비」파를 믿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비판정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듯 했다. 순수 이성이니 하는 것은 도리어 철학보다도 종교가 지녀야 할텐데 이런 것은 아주 제쳐놓고 「알라」신만을 찬미하는데 여념이 없는 이 나라 사람들의 사고 방식은 불가사의하다.
이 나라는 날이 갈수록 땅의 축복으로 자꾸만 부강하게 마련이며 지금 학교 교육도 무상일뿐 아니라 국립 병원도 무료로 봉사해 주는 만큼 국민들은 순전히 석유의 혜택으로 이러한 사회 보장은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빈부의 차가 심해 보이는 것은 어딘가 비극적인 요소로 보였다.
이 나라는 여러 이웃 나라인 「이슬람」 국가와 함께 「아랍」 민족주의를 내세우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슬람」주의를 가장 받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따라서 정치 사상을 초월한다기 보다는 종교 제일주의로서 다른 「이슬람」 국가는 물론이며 이교 국가를 능가하는 종교 이상향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것을 느낄수가 있는데 이것은 이들의 사생활에서 엿볼 수 있다.
「이란」은 개혁파의 「이슬람」교를 믿고 있어서 서구적인 생활 양식에 따르고 있지만 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코란」의 계율을 그대로 생활에 적응시켜 살고 있다. 이「코란」은 기독교의 성서와는 달리 생활 백과 사전이 될 만큼 일상 생활의 예의 범절이며 의료·음식 법까지가 모두 들어 있는데 이들의 모든 생활은 이「코란」에 따라 지배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사람들이야말로 「코란」의 화신이다.
소련을 비롯하여 서방 국가와 접촉하고는 있다고 해도 정신면에 있어서 쇄국주의나 다름없이 「코란」 이외의 것은 받아들이지 않으니 이 나라는 「철의 장막」이 아니라 「코란의 장막」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 쬐는 사막에서 태어난 「이슬람」교는 강인한 종교이기 때문에 천형의 불모의 땅에서 살아올 수 있다고 하더라도 과연 이러한 종교 제일주의가 자기 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까지도 좋은 영향을 주는지는 좀 더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일 것만 같았다.
종교적인 것만이 세계를 구원한다고 「토인비」는 말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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