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아시아 평화의 구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한국 국제 관계 연구소는 6일부터 3일간 저명한 외국 학자를 초청하여 「국제 질서 내에서의 평화의 구상」에 대한 국제 학술 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다음은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보를 주제로 한 이번 학술 회의의 첫날 주제를 발표한 「루시안·파이」「도널드·자고리아」 두 교수의 글을 간추린 것이다. <편집자주>

<중공의 외교 정책과 남북한>루시안·파이 (미 매서추셋 공대 교수)|말로는 북괴 입장 계속 지지|권력 투쟁 때문에 김일성 행동에 효과적으로 대처 못해|경제 발전에 중공의 국내 압력 집중
오늘날 모든 중요한 「아시아」인들과 태평양 세력들의 이해가 대립되고 있는 동북아에 대한 중공의 외교 정책과 남북한에 대한 중공의 입장을 알아보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 중공의 정치 상황이 69년 이후 가장 모호하기 때문에 중공의 외교 정책을 무엇이라고 단언적으로 말할 수 있는 시기는 아니다. 즉 중공의 외교 관계는 흔히 국내 정치를 반영한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먼저 중공의 현 국내 정세를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모택동은 스스로가 말한 바와 같이 「원숭이」와 「호랑이」의 이중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에 딱 부러지게 어느 한 사람을 그의 후계자로 지명하여 육성하지 않았다.
따라서 모 사후 원로 세대가 계속 집권할 것인지 젊은 세대가 통치할 것인지는 심각한 문제로 남겨진다.
원로 세대가 계속 집권할 경우에는 중국의 위대한 전통에 보다 집착할 것이다. 그러나 중공의 제도는 기묘한 「파라독스」에 의해 특징 지어 진다. 즉 「이데올로기」상으로는 젊음과 경력의 덕을 찬양하지만 노인들이 실제 권력을 가지고 있다.
많은 정치적 선전이 영광스런 미래를 향해 진보와 발달을 강조하는 한편 정부가 「대장정」과 같은 커다란 과거의 사건을 회고할 수 있도록 젊은이들에게 경험과 격려를 이상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중공에서의 계승 문제가 노인정의 종말을 의미하며 젊은 지도자 형태로 변한다면 중공 정치 제도는 기본적으로 변화가 있을 것이다. 젊은 지도자에 의한 통치는 기능적 제도 사이에 좀 더 많은 갈등을 가져올 것이며 더 이상 노인층 지도자들의 온건한 영향력이 미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경향은 좀 더 경쟁적인 정치 형태든지, 또는 관료적 조절 제도로 움직일 것이다.
구세대가 깨지고 노인정이 해체된다면 중공은 「이데올로기」의 영역을 넘어서 정통성 위기에 도달할 것이다. 이 위기에 처하면 권위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갈등이 생기겠지만 어느정도 빠르게 구세대들에 의한 안정되고 전통적인 통치로부터 벗어날 것인가는 예측할 수 없다.
과거의 권력 투쟁은 모택동이 갈등을 해결할 수 있든지, 아니면 종국에는 군대가 질서를 회복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과격파와 온건파 사이에 일어났다. 오늘날에는 궁극적인 군사적 권위가 계속 존재할 수 있을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문화 혁명 기간에 중공은 고립적이었다는데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을 중공에 초대하기 위한 단서를 만들었다.
미국과 중공이 외교 정책의 이해점에서 가장 충돌되는 차이점은 한반도에 관한 것이다. 중공은 소련과 경쟁하는 관계로 김일성의 일련의 목적에 더욱 동정적인 경향을 띄었다. 이것은 아마 권력 투쟁 시기 동안 중공이 특별히 김일성의 행동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고, 또 중공 자체가 어떤 결정적인 외교 정책을 취할 수 없게 되겠지만 적어도 말로는 북괴의 입장을 계속 지지할 것이다.
중공의 국내 압력은 국내 발전에 집중하고 외교적 모험을 피하여야 할 어쩔 수 없는 필요성을 갖도록 한다. 중공이 국내 사태에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동북아는 더욱 안정될 것이다. 또 중소 분쟁이 감소되면 동북 「아시아」의 평화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한반도에 미친「데탕트」의 영향>도널드·자고리아 (미 뉴요크 시립대 교수)|소·중공「북괴 야욕」 지원 꺼려|미·일 관계 개선에 우선…「한국 고립화」 전략 북괴에 역효과|북괴는 결국 「두 한국 안」 수락할 듯
「모스크바」와 「워싱턴」간의 「데탕트」 및 북경파 「워싱턴」간의 관계 개선은 일·소, 일·중공간의 관계 정상화와 함께 한반도의 상황을 완전히 변화시켰다. 동북 「아시아」에 관련된 중·소 분쟁을 비롯한 몇가지 이유로 해서 소련과 중공은 다같이 미국 및 일본과의 관계를 정상화시키는데 강력한 이해 관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북괴는 두 공산 강국으로부터 그들의 모험적인 정책에 대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기대할 수는 없게 되었다. 소련이나 중공으로서는 적어도 당분간은 「워싱턴」 및 동경과의 관계 개선이 북괴의 야망을 지원하는 것보다 높은 우선 순위를 갖고 있다.
종래 북괴는 「월남 유형」을 들어 주한미군이 철수하게 되기를 바랬으나 이제는 더욱 교묘한 술책으로 그 목적을 이루고자 하고 있다. 한국이 소련이나 중공과 접촉하는 것을 반대하면서 북괴는 일본과 미국에 관계를 정상화하자고 제의, 한국을 고립시켜 자유중국이 「유엔」에서 축출된 것과 마찬가지로 국제 조직에서 고립시키려 하고자 한다.
북괴가 그 목적을 달성하는데 소련이나 중공 등 동맹국들이 무력 사용 (무력 위협 조차)을 더 이상 찬성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인식한 북괴는 통일에 대한 새로운 정치적 전략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대만 유형」과 「독일 유형」중에서 북괴는 분명히 대만식 해결을 바람직하게 여기고 있다.
중공이 「두개의 중국」 해결안을 거부하고 대만의 주권 국가로서의 합법성을 부정하여 고립시키기를 희망하듯이 북괴도 한국을 적화하기 위해 마찬가지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이 같은 새로운 정세가 북괴로 하여금 대결 정책을 포기하고 한국·일본·미국 및 국제 기구에 대해 새롭고 실용적인 전략을 채택하도록 강요한 한 요인이 된다.
그들은 일본에 대해서 지금까지의 적대감을 극적으로 뒤집고 실질적인 경제 관계를 발전시키고 있으며 외교 정상화를 위한 진지한 예비 공작을 벌이고 있다.
미국에 대해서도 북괴는 또한 관계 정상화의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북괴는 또 각처에서의 외교적 승인을 얻으려하고 국제 기구의 회원이 되려고 모색하고 있으며 이러한 정책은 66∼71년 사이의 혁명 전쟁 전략과는 일치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북괴는 혁명적인 자세에서 국가 대 국가간의 외교에 중점을 두는 정책으로 전환하도록 강요되었다.
그러나 북괴의 한국 고립화라는 새로운 전략은 성공하지 못할 것 같다. 중공은 강대국이기 때문에 대만을 「유엔」에서 축출할 수 있었고 외교적으로 고립시킬 수 있었다. 세계는 현실적으로 강대국인 중공을 제외시킨 채 현안의 국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대만을 희생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남북한간의 사태는 이와는 비교할 수가 없다.
사실 평양 측의 새로운 정치 공세는 역효과를 가져 올 가능성이 많다.
북괴는 외교 활동을 강화함으로써 부수적으로 「두 개의 한국 정책」의 씨를 뿌리고 있는 것이다.
소련과 중공이 한국과 수교하지 않는 한 태국과 일본이 평양측과 관계를 맺을 가능성은 없다. 그러는 동안 상호 교우 승인을 하라는 압력은 점점 커가고 있다.
소련 측은 이미 비공식적으로 그런 움직임을 지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북괴도 국제 활동을 확대해 감에 따라 결국 「두 개의 한국」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