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제례 의상은 잘못됐다|석주선 교수 (동덕여대) 고증 강좌 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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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 75년5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종묘제례의 면류관과 면복이 격식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견이 일어 관계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종묘제례는 지난 5월2일 서울 종묘에서 문화제로 지정된 뒤 처음으로 행사 (제사를 지냄) 가 있었다. 『종묘제례 의상이 틀린다』고 주장한 사람은 동덕여대 석주선 교수. 석 교수는 지난 3일 민족 문화 고증회 (회장 윤택중)가 마련한 한국 민족 문화 고증 강좌에서 제례복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다.
종묘제례 의상은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전예리사 이재범씨 (49)가 여러 가지 역사적 고증으로 복원했으며 지난 5월에 있었던 종묘제례에선 이씨가 복원한 제례 의상으로 행사가 됐던 것이다. 이씨는 이 제례복 복원으로 무형문화재 기능 보유자로 지정됐다.
석 교수는 『조선 왕조 시대의 제도에 따르는 의상의 변천』이란 강연에서 왕세손 (이구)이 입었던 면복·면류관의 모양·빛깔·줄의 수·장수의 불분명·장의 부정확 등을 지적, 제례복의 문제점을 제시했다.
석 교수는 『조선 왕조의 의복 제도는 충분한 고증이 필요한데 왕세손이 입었던 면복·면류관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며 문화재로 지정된 옛 왕실의 대표적인 제례복이 초라하기 이를데 없는 것은 문화적인 수치라고 말했다.
5월에 있었던 종묘제례에서 초헌관 이구씨는 왕세손의 자격으로 대한 제국 황제의 대례복차림의 제주가 됐었다.
석 교수는 이구씨의 제주 자격에 대해서도 언급, 망국 왕손 (왕세자 영친왕의 아들이지만)에게 왕세자 자격을 참칭 하게 하는 것도 체모에 어긋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즉 종묘 제사는 왕이 직접 참사하는 친제와 집행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꼭 친제 형식을 고수할 필요는 없다는 것.
그리고 이제 사가가 된 조종들이지만 후손들에게는 엄연한 조상인데 조상의 제사를 「구경거리」나 시쳇말로 「소」를 만들 수는 없다고 덧 붙였다.
한편 석 교수의 주장에 대해 이재범씨는 『석 교수가 왕조시대의 제례복과 대한제국 이후의 제례복을 혼돈한 것 같다』며 종묘 제습의 제례복은 대한제국의 모든 예법을 밝힌 『대한비전』 (고종 34년·1897년)에 상세히 기록돼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씨는 『석 교수는 대한제국 이전의 예복을 기록한 「대전 회통」의 조선 왕조 시대의 예복을 잘못 알고 있는 모양』이라고 덧붙였다. <김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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