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나의 계획 (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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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무슨 기후가 그런지 벌써부터 무더운 여름을 느끼게 하여 여름을 싫어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본격적인 더위는 이제부터 시작이라 생각하니 더욱 그렇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계절과 싫어하는 계절의 차이가 있겠으나 내 경우는 여름보다는 겨울이 훨씬 좋은 것 같다. 여름은 부담스럽다. 유난히 더위를 타는 체질도 그렇거니와 땀을 몹시 흘리기 때문이다.
하기야 여름에 땀 안 흘리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한다면 그런 체질 탓만으로 여름을 싫어한다는 이유는 어색하기 이 데 없다. 사실 여름의 매력은 역시 바다와 산을 즐기는 일일 것이다. 내가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는 이 여름의 소중한 매력을 잃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의식적으로 바다나 산을 피하는 것은 아니나 어찌 된 일인지 피서라고는 수년에 겨우 한두번 가 본 것이 고작이고 매 여름 무더위를 서울에서 꼼짝 못하고 지냈다.
금년도 벌써 7월을 맞게 되는데 가만히 일정을 따져 보니 이번 여름도 숨 돌릴 시간이라고는 겨우 20일 정도밖에 없다.
이 시간만이라도 여름과 친해 질 수 있는 계획을 세워야겠다고 마음먹으면서도 태산같은 학업을 생각하면 숨통이 막힐 것 같다. 어쨌든 이번 여름에는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단단히 손질해야 할 작품이 있다. 두 작품 모두 다급하게 시간제한을 받으면서 작곡한 것이어서 연주 후 부족하고 불만스러운 점이 너무 많아 다시 악보를 들춰보기조차 싫으나 손질을 안하고는 못 견딜 것 같다. 손을 대기 시작하면 한 여름 가지고는 어림없지만 이번 여름에 끝내지 못하면 다음 기회에 또 하는 수밖에 없겠다. 또 한가지 해야할 일이 있다면, 우리 나라에도 긴 여름을 이용한 하기음악제나 하기 음악 강습회 같은 것이 꼭 있어야 되겠다고 생각한다.
외국의 유명한 음악제나 예술제 같은 것이 거의가 다 한여름에 명승 고적이나 바닷가·호숫가에서 열린다. 피서와 정서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더러는 나 같이 여름을 등진 사람들도 이런 기회에 접하다 보면 여름이 제일 좋은 계절로 바뀌어 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얼마나 값있고 유익한 여름이 될 것인가. 피서객이나 관광객이 많이 모이는 곳을 골라 우선 금년 여름은 장소 물색을 실지로 했으면 하는데 어느 만큼 돌아다닐 수 있겠는지 두고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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