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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서소문 포럼

통일, 독일 문제와 한국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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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오영환
논설위원

4반세기 전 헬무트 콜 서독 총리의 동독 드레스덴시 연설은 두 개의 ‘독일 문제(German question)’에 답하는 자리였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40일째다. 하나는 통일의 내부 문제다. 콜은 동독 청중에게 절제된 메시지를 던졌다. 민족주의의 불을 지피지 않고 서독 편입의 희망을 심어주었다. 당시는 철의 장막만 무너졌을 뿐이다. 독일 연방 통일국가도, 국가연합도 아닌 그 전 단계의 협력이 동·서독 간에 모색됐다. 콜은 통일이란 단어를 한 번 쓰면서 “역사의 순간이 허락한다면”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그 대신 평화·자유와 더불어 자결을 강조했다. 자결은 통일이 결국 동독 주민의 손에 달렸다는 얘기다. 독일 통일 내부 문제는 이듬해 자유선거로 완성된다.

 다른 하나는 통일의 대외 문제다. 콜은 연설에서 유럽에 통독의 공포를 불식시키려 했다. 강력한 독일은 유럽에 악몽이었다. 1·2차 세계대전이 그랬다. 유럽 중원의 독일연방이 흩어져도, 뭉쳐도 평화는 깨졌다. 분열되면 전쟁의 교차로가 됐고, 통합하면 패권의 길을 걸었다. 콜은 “독일이라는 집은 유럽이라는 한 지붕 밑에 지어져야 한다”고 했다. 유럽 통합의 테두리 안에 묶인 통독의 미래상이다. 독일은 유럽연합(EU)의 기관차가 됐다.

 독일 통일은 두 개의 독일문제 해결 과정이다. 환희의 순간은 서독의 일관된 내·외정의 산물이다. 진보와 보수 정권 간 내독(內獨) 정책의 차이는 컸지만 인도적 지원·교류협력의 원칙은 바통터치됐다. 그 초점은 동독 주민이었다. 89~90년 전환시대 콜의 통일 외교는 히틀러 제3제국의 원죄인 분단 체제를 되돌리는 여정이었다. 베를린 장벽은 동독 주민이 무너뜨렸지만 장벽을 항구히 걷어낸 것은 콜 정부였다. 주변국의 안보 우려 해소는 난제 중의 난제였다. 프랑스는 독일과 유전적 적대 관계였다. 영국은 400년 동안 유럽 대륙의 세력 균형을 대외정책의 ‘법’으로 삼아왔다. 소련은 독일의 보복주의를 들먹거렸다. 콜은 하나의 유럽 속 통독 비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잔류와 동독 지역에 대한 조약의 잠정적 적용 제한, 37만 명 체제의 군사 소국화로 ‘제4제국’ 우려를 씻어나갔다. 통일 외교는 베를린 장벽 붕괴만큼이나 극적이다.

 지구본을 한반도로 돌려보자. 냉전은 열전(熱戰)으로 변했다. 분단의 벽은 높고 단절의 골은 깊다. 남북 간에는 2000년 이래의 제한적 교류·협력도 끊기다시피 했다. 이질성이 동질성을 짓누른다. 독일에선 통일 전 동독 주민의 3분의 2가 서독과 접촉했다. 북한은 동독이 아니다. 인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이제 겨우 시장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북한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은 국제사회 개입의 블랙홀이다. 남북 관계도 뒤틀리고 있다. 김정은 체제는 안정적인지 아닌지 가늠키 어렵다. 한반도 내부 문제는 분단을 넘어 무질서 덩어리다.

 대외 환경도 마찬가지다. 독일 통일은 냉전 해체와 궤를 같이한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지금 동북아에선 미·일과 중국의 대립 축이 선명하다. 반세기 전과 역방향이다. 주변국은 통일 한국이 몰고 올 수 있는 세력균형 붕괴를 걱정할지 모른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 전개에 촉각을 세울 것이다.

 통일대박론은 형식 논리로 보면 대북 정책의 일대 전환이다. 화해와 협력이 아닌 통일로 가는 대북 접근이다. 뉴프런티어로서의 북한론이 무성하다. 북한의 경계는 높였지만 국내에선 소기의 성과를 거둔 듯싶다.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연설은 대북 메시지로 채워졌다. 핵심은 인도적 지원·민생·동질성 회복이다. 드레스덴의 상징성에 비하면 거창하지 않다. 하지만 독일 통일의 교훈이 녹아 있지 않을까 싶다. 북한 주민과 맞닿아 있는 제안들이다.

 통일 기반 구축 외교는 헝클어져 있는 인상이다. 동북아의 대결적 판도를 주도적으로 풀기보다 그 틀에 끌려다니고 있는 듯하다. 외교에 선과 악, 제로섬 게임의 이분법이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닐까. 차제에 통일 한국의 국가상도 가다듬을 만하다. 그래야 주변국의 오해를 벗을 수 있다. 통독의 국가상은 서방 동맹체에 닻을 내린 동서 유럽의 가교였다. 많은 시사점을 준다. ‘독일 문제’와 ‘한국 문제’는 다르지만 같다.

오영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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