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의 죽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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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스파이」놈이 또 왔다.』-영국의「헨리」7세가「런던」에 온「스페인」대사를 두고 한 말이다.
한 나라의 대사가 다른 나라에 외교사절 단장으로 상주하기는 15세기 중엽,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에서 비롯된다.
이 무렵부터 대사의 일이란「마캬벨리」가 그려낸 것처럼 능숙하고도 교활한 외교수완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정보수집의 임무를 띄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도 남아 있는 영 정부의 15세기 때의「스테이츠·페이퍼즈」(국가문서)속에는「베니스」보고서라는게 있다. 바로「베니스」주재 영국대사가「이탈리아」와 중동의 정치·외교·정보를 수집하여 정기적으로「런던」에 보낸 보고서들이다. 이 당시의 대사들이 암살되는 일이 흔했던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하겠다. 그러나 근대에 와서는 대사의 일은 외교에 한정되어 있다.
따라서 암살의 위험은 거의 없었고 그런 일도 없었다. 외출할 때마다 경호원을 데리고 다닐 필요도 없어졌다.
다만 중공이 처음으로「워싱턴」에 외교사절단을 상주시켰을 때에는 상례대로 국무성의 경호대원 이의에 비밀 경호원까지 배치시켰다.
이것은 예외에 속한다. 이번에 피살된 미대사도 경호원을 대동하지 않았었다. 그는 암살의 위험을 전혀 느끼지 않았는가 보다. 당연한 얘기이겠지만 그는 미국대사가 수난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었었는가 보다.
지난 68년8월에는「과테말라」주재대사가, 73년4월에는「수단」주재대사가, 74년8월에는「키프로스」주재대사가 각각 살해되었다. 서독대사도 남미에서 살해 된지 얼마 되지 않는다.
대사 이외에도 미국의 고급외교관들이 살해된 예는 68년 이후 5명이나 된다. 인질로 잡혔던 것도 5건이 된다.
이 모두가 중동이 아니면 남미에서의 일이었다. 그리고 거의 모두가 과격분자들에 의한 명분이 뚜렷하지 않은 암살사건들이었다. 지난 70년6월에「요르단」에서 미 외교관들을 납치한「팔레스타인」해방 인민 전선파「게릴라」들은 그 부인들을 강간하기까지 했다.
이번에 피살된 대사는 중동문제의 평화적 타결을 협상하고 있던 참이었다. 따라서 평화협상을 원하지 않는「팔레스타인·게릴라」에게 혐의가 짙었었다.
그러나 PLO쪽에서는 어제「레바논」사회주의 혁명 기구라는 극좌단체에 속하는 5명의 살해범을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이게 사실이라 해도 미 대사 살해의 지령을 누가 내렸으며 무엇을 노린 것인지는 여전히 흑막 속에 잠겨있다. 사건의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도 미국무성에서는 모르고 있다.
중동사태는 좀처럼 미궁에서 벗어날 것 같지가 않다. 안타까운 것은 미국무성보다 중동사람들이어야 할텐데 그렇지 않아 보이니 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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