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전 도쿄지점장, 불탄 자동차서 의문의 죽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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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은행 일본지점의 부당대출 의혹 사건 관련자들이 잇따라 숨진 채 발견됐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 우리은행 도쿄지점장 김모씨가 이날 오전 8시쯤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등에 따르면 김씨는 불에 전소된 차량 안에서 시체로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양주경찰서 관계자는 “발견 당시 이미 차가 새카맣게 타 있었기 때문에 탑승자 신원을 확인하기 힘든 상태였다”며 “차량 번호판을 확인한 결과 김씨 차량이라는 사실을 확인했고 현재 시신에 대한 DNA검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해 우리은행 도쿄지점장으로 근무하다 귀국해 우리은행 자회사 임원으로 승진했었다. 김씨는 최근 우리은행 도쿄지점 부당대출 의혹과 관련해 금융감독원에 출석해 검사를 받았다. 금감원은 우리은행 도쿄지점 관계자들이 부당대출 대가로 거액의 리베이트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됨에 따라 검사를 벌여왔다. 우리은행은 앞서 자체 감사 결과 도쿄지점에서 600억원대의 부당대출이 발생했다는 정황을 잡고 금감원에 보고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최근 검사 과정에서 도쿄지점 불법대출과 관련한 결정적 증거가 나왔는데 이 때문에 부담을 느낀 게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금감원 검사를 받던 국내 은행 도쿄지점 관계자들의 사망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17일에도 역시 부당대출 의혹을 받던 국민은행 도쿄지점의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금융감독원과 국민은행에 따르면 이 직원은 도쿄지점 서고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직원은 현지 채용된 재일동포로 도쿄지점에서 7년간 근무하며 대출업무를 담당했다.

 한국과 일본 금융당국은 이 직원이 숨지기 하루 전인 16일 국민은행 도쿄지점에 대한 공동 검사를 시작했다. 금감원은 국민은행 도쿄지점 부당대출 규모가 1800억원이며 이 중 국내로 들여온 비자금은 최소 20억원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지난 11일 도쿄지점 전 지점장 이모씨와 부지점장 안모씨를 변제능력이 없는 업체 2곳에 부당대출을 해주고 거액의 비자금을 받은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수재 등)로 구속했다. 이들 2개 은행 외에 기업은행 도쿄지점도 130억원 정도의 부당대출 혐의로 금감원 조사를 받고 있다.

 국내 은행 도쿄지점들은 일본 금융당국의 관할 아래 있고 한국 금융당국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지 않아 사실상 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국내 본점이 1년에 한 번 해외지점을 점검하지만 국내 지점 수준으로 통제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금감원도 매년 200곳이 넘는 국내은행 해외지점 중 4~6곳만 검사하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해 연말부터 부당대출 사건이 잇따라 터지자 이들 3개 은행 이외의 다른 은행들에 대해서도 상반기 중 도쿄지점을 점검한 뒤 검사 결과를 제출하도록 한 상태다.

이지상·안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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