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헌금」과「기업」이대로 좋은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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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끼」(삼목)내각을 총사퇴로 몰고있는「륵히드」사건, 새로 통과된「정치자금 규정법」등 일본정계는 기업과 정치자금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다. 전후「자유경제체제의 유지」라는 명목으로 계속되어온 일본기업의 정치헌금도 이제는 전환점을 찾을 때가 된 것 같다. 『정치와 금력은 바늘과 실』이라는 말도 있지만 전후 일본의 정치자금은 너무나 팽창해 버렸다. 지난 1955년 자민당에의 재계헌금상담회「경제재건간담회」가 처음 발족된 이후「국민협회」「국민정치협회」등으로 이름을 바꿔가며 지난 74년까지 20년동안 받아들인 정치헌금총액은 1백12배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의 일본 GNP(국민총생산) 성장을 보면 16배밖에 안되므로 정치헌금의 규모가 얼마나 커졌는가를 쉽게 알 수 있다.
이렇게 엄청난 돈이 드는 정치를 지탱해 온 것은 개인헌금이 아니라 기업이었다.
국민협회자료에 따르면 발족 초기 개인헌금과 법인헌금의 비율은 10대90이었는데 최근에 와서는 1대99로 되었다.
자민당의 정치자금 거의 전부가 기업에서 내놓는 돈인 것이다.
전후 30년간 자민당이 공식 발표한 숫자만도 1천억「엥」가까운 돈을 기업에서 내어놓았는데 이렇게 기업이 많은 정치헌금을 하는 이유에 대해 지금도 『자유주의 경제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친일철의 간부는 판에 박은 듯이 대답한다.
그러나 사실 일본의 기업은 전후 오랜 기간 동안의 보호무역체제 속에서「무역과 자본의 자유화」라는 울타리를 외부압력으로부터 극력 보호하기 위해 정치력을 이용해왔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근거가 차차 퇴색해 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 이유의 하나가 경제의 국제화와 개방화 경향이다. 경제가 국제화되면 될수록 기업의 정치헌금의 이득은 엷어져가고 있다.
전자제품「메이커」「소니」(SONY)의 예를 들어보자.
대개의 대기업에서는 담당중역의 눈치하나로 헌금액이 결정되는데 반해「소니」에서는 사장·회장선도 아니고 완전히 사무「레벨」에서 처리되어진다. 헌금액도 월5만「엥」을 철저히 지켜 경단연 간부를 격노케 하는가하면 『재벌주제에 째째하다』는 핀잔마저 듣는다.
이유는 정치와 아무 관계없이 순전히 자기 힘으로 오늘의 급성장을 이룩한데도 있겠으나 특히 미국에 주식을 상장한 후는『SEC(증권취인위원회)의 규칙으로 정치헌금 같은 용도 불분명한 금액은 계상하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소니」같이 가장 자유주의 경제체제에 민감한 기업이 가장 헌금액이 적다는 역설은「기업의 정치헌금=자유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필요경비」라는 정설에 회의를 불러 일으키기에 족하다.
그러나「소니」와 같은 기업은 예외적인 존재다. 지금도 많은 기업의 대부분이「의리」에 묶여 헌금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 1월부터 시행된 새「정치자금 규정법」은 기업의 정치헌금에 대해 자본금별로 상한을 설정하고 이를 위반했을 때는 벌칙규정까지 설정하고 있다.
1개인의 후보자 또는 정치단체에 대한 헌금은 1백50만「엥」이 한도라고 못 박혀 있어 신법은 결국『정치가가 자기 손으로 자기 복을 죄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 최대 철강회사인 신일철도 연간 자민당(국민정치협회)이나 공직후보자에 대해 계1억「엥」, 파벌이나 개인후원회에 대해서는 그 절반인 5천만「엥」, 합계1억5천만「엥」이상의 헌금은 할 수 없게 되었다.
거기다 당(정치자금단체)에 대한 1만「엥」이상의 헌금, 그의 정치단체에 대한 1백만「엥」을 넘는 헌금은 모조리 공개되어야한다.
신일철의 경우 5천만「엥」의 테두리에서 1인당 1백50만「엔」씩 주어도 33명의 정치가 밖에 대어줄 수가 없다.
이것으로 위로는 국회의원에서부터 시골 지방의회의원까지 손을 쓰지 않으면 안된다.
이 경우 기업의 대응책은 공개의무를 면하는 1백만「엥」이내로 소액화하여 많은 정치가에게 뿌리느냐, 다소의 마찰을 각오하고 소수정예를 선택, 집중 지원하느냐에 놓인다.
정치자금 소액화를 택하면 정치가와의「줄」은 차차 엷어지고 결국 왕년의「섬유의원」, 「바나나의원」등은 차차 없어지게 될 것이다. 또 소수 정예 집중지원을 택하면 자민당의원중에서도 기업을 헐뜯는 반「그룹」이 생길 우려가 있다.
어떤 방법을 택하든「기업의 정치헌금은 자유주의 경제체제를 지키기 위해 필요경비」라는 단순 공식으로는 안될 시기가 온 것같다.
젊은 정치가들 중에서는 정치자금규제법을 계기로 기업에 기대하지 않고『기업과 멀리 하자』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고 【동경=김경철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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