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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예의바른 한국기술자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서울「테헤란」으로 향하여 대형「트럭」을 타고「자그로스」산지의 길을 달리던 나는 소스라쳤다. 내리받이 길의 꼬부라진 곳에서 남의 차를 앞지르려던 승용차가 서로 어기는 두 대형「트럭」사이에 끼여서「샌드위치」처럼 납작하게 되는 바람에 그 운전기사는 그 자리에서 숨지고 말았다. 그는 우리나라 운전기사가 아니라「이란」사람이었다.
도로는 일차 선으로서 최근 보수한 만큼 좋은 편이지만 차들은 거의 대형「트럭」인 데다가 고속으로 달리니 이같이 사고가 나면 불행을 초래하기 마련이었다.
이 나라 운전기사들은 지난날엔 낙타를 타고 뚜벅뚜벅 지루한 사막 길을 가던 대상들의 자손들이다. 석유가 쏟아져 나와 낙타 고삐 대신 자동차「핸들」을 잡게 된 셈인데 도리어 침착해야 할 이들이「핸들」을 잡으면 자기도 모르게 광적으로 운전하게 되는 것이 이 나라 운전기사들의「콤플렉스」라고 한다.
이들에 비하면 여기에 와 있는 우리나라 운전기사들은 기술도 뛰어나거니와 동양적인 중용사상이랄까, 침착하게 운전하는 것이 여간 믿음직하지가 않았다.
이 나라가 우리에게 일자리를 주었대 서가 아니라 교통사고로 인한「이란」운전기사의 불행한 죽음에 우리나라 운전사들이 경건히 묵념을 드리는 자세는 과연 동양예의지국의 민족다운 아름다운 정경이었다.
오전에「시르잔」이란 꽤 큰 마을에 이르렀다.
우리 운전기사들이 고용되어 있는 운수회사인「이란·탱커」의 연락사무실에 들르니「이란」소년이 우리 운전기사와 나를 보자마자『선생님, 안녕 하십니꺼?』라고 우리 말로 깍듯이 인사를 건네 왔다.
우리 운전기사들과 자꾸 말하니까 우리 말을 배운가 본데「선생님」을「선상님」,「합니까」를「합니꺼」로 발음하는 것이 더욱 익살스러웠다. 이 소년은「그리스」동화 속의「나르시소스」청소년과도 같이 잘 생겼는데 낮선 한국사람이 왔다고 반가 와서 제법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말들을 섞어 가며「이란」말을 하는 것은 대견했다.
「우랄·알타이」어가 아니라「코리언·이라니언」의 혼성 조가 되는 셈인데 우리나라 말이 이 나라에 부분 적으로 알려졌을 망정 한결같이 아름답고 품위 있는 말들을 하는 것이 못내 기뻤다. 외국어는 상소리부터 배우기 쉬운 법인데 이 소년뿐만 아니라 어른들까지도 점잖은 말을 쓰고 있으니 분명히 우리 운전기사들이 잘 가르쳐 준 때문일 것이다.
「시르잔」을 떠나「케르만」시 못 미쳐「바긴」이란 교통중심지에 이르렀다. 이곳은 특히 예로부터 육로로서「유럽」에서 「아시아」로 이르는 중요한 길인데「알렉산더」제국을 이루고 있던 지역이며 그 옛날「알렉산더」대왕이 혹 이 길을「그리스」군대를 이끌고 지나가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니 어렴풋이 그 때의 모습이 그려졌다. 「페르샤」문명을 깡그리 파괴했던「알렉산더」대왕은 이 나라에는 원수일는지 모르나「헬레니즘」을 내세웠던 그의 슬기로운 사상은 매우 훌륭하게 느껴졌다.
우리「트럭」은 다시 달려「라프산잔」이란 곳에 이르렀는데 이곳은 우리 운전기사들이 잘 들르는 곳이라고 한다. 길가에는 우리 한글과「이란」글씨로 쓴『대한전선건설(주)』란 간판이 보였다. 이 건설회사는 이 곳에서「케르만」까지 108km가 되는 거리를 일본「주우」의 위촉으로 마침 철탑공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 동포들은 운송업에만 종사하는가 했는데 또 다른 이런 일까지 맡아서 하고 있으니 우리나라의 해외진출이 새삼스레 놀라 왔다.
「이란」사람들의 평판을 물어 보니 우리나라 측량기술자들은 운전기사들이 그렇듯이 신용이 있고 부지런하다고 한다. 계약기일 전에 순전히 우리나라 기술진에, 그나마도 우리나라의 재료로서 완수할 계획이라고 한다. 비록 한 다리를 거쳐 일본의 위촉을 받고 한다지만 모두들 조국의 명예를 걸고 일하겠다는 굳건한 의지로 불타 있었다.
여기서 사귄「이란」의 한 지성인은『나는 여러 나라를 다니며 그 나라의 모습을 살펴보았지만 우리나라에 와서 일하는 한국인처럼 자기 일에 열중하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며 우리나라 사람을 극구 찬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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