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전고투...밤잠 못 잔 55일|끝내 부인하다 물증 보이자 자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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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사건을 좀더 빨리 해결치 못해 국민여러분에게 송구스러울 뿐입니다.』서울은행 종로5가 지점 권총강도사건 해결로 1계급씩 특진된 수훈의3명은 7일하오 새로운 계급장을 받아들고 즐거운 표정 속에서도 겸손함을 잊지 않았다. 서울남대문경찰서형사계 김정환 경감(48)과 서대문경찰서 김문직 경장(42),노량진경찰서 공만직 순경(38)등 3명. 이들은 4월12일 은행강도사건이 발생한 뒤 수사본부요원으로 차출된「베테랑」수사경찰관들이었다.
수사본부는 사건발생 후 10여 일 동안 용의자·은신처·도주로 등에 대한 수사를 벌였으나 진전이 없자 4월24일 체제를 정비, 장기수사에 나섰다.
이때 김 경위는 「팀」장으로 지명을 받고 김 경장과 공 순경 등 모두 7명으로 1개조를 구성했다.
김 경위「팀」에 결정적인 제보가 날아든 것은 범인을 쫓아 헤매기 25일 만인 5월20일.
『범행 때 쓰인 권총탄환과 같은 WCC62 MATCH탄 20발이 발견됐다』는 서울노량진 국민학교5학년 이병석군(12)의 제보가 수사본부에 보고된 것이다.
20일 상오11시 수사본부장 한기태 총경은 김 경위에게 이 제보의 해결을 하명했다.
그때까지 김 경위는 혼자서 21건의 제보·용의자를 추적했으나 모두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져 극도로 지쳐있던 상태. 김 경위는 문제의 MATCH탄이 유출된 부대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군 수사기관과의 긴밀한 연락으로 탄환출처를 수사한 결과 이 탄환은 부대에 보급된 것이 아니라 이미타 부대로 전송된 모 연대장이 인근 미군부대에서2백발을 얻어온 것이며 전속된 연대장이 사품(사품)으로 인계하고 간 것임이 밝혀졌다.
박태규씨 (31·예비역대위)는 이 부대에 근무 할 당시 이 모 병장(25·현K대4년)으로부터 20발을 얻어 집에 두고있었다고 말했다.
김 경위 「팀」은 부대에서 제대한 이 병장의 거주지(강원도춘천시효자동)를 확인, 이 병장을 찾아갔다.
이병장은 박씨에게 실탄을 준 사실을 시인하고 지난2년 동안 실탄에 접근할 수 있는 인물이 연대장실 당번 등 21명 가량 된다고 말해주었다. 이 가운데 14명은 이미 제대하고 부대를 떠났으며 7명만이 현역으로 있었다.5월21일 김 경위 「팀」은 이들 21명의 사진을 모두입수, 그중 범인과 인상이 비슷한 5∼6명을 추러냈고 25일께는 이들에게 사필 진술서를 쓰게 했다.
이 5∼6명 중에 포함된 김태치 병장(작일자 상병은 잘못)은 자필 진술서에 자신의 주소를 가짜로 기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부터 용의점이 부각됐다. 군 수사기관과 경찰은 이때부터 김 병장의 신병을 확보, 직접조사를 시작했다.
경찰은 군 수사기관에서 압수한 김 변장의 수첩에 분명히 자신의 집 주소가「경기도성남시단대동660의80」으로 정확히 「메모」돼 있는 것읕 발견했다. 경찰은 김 병장이▲자필진술서에 번지를 일부러 틀리게 쓰고▲연대장 당번 병으로 MATCH탄이 보관돼있는 연대장 사물함을 직접 관리해 온점▲김 병장의 사진을 본 은행원 등이 범인과 흡사하다고 진술한 점으로 미뤄 5일 범인으로 일단 단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경찰은 김 병장의 주변수사를 은밀히 진행, 부모가 살고있는 성남시에 5차례, 부대가 있는 법원리에 7차례나 다녀왔다.
김 병장은 경찰에 연행돼 은행원들과 대질시키는데도 끝내 범행을 부인했다.
그러나6일 상오2시 경찰이 성남 집에서 범행 때 입었던 옷과 검정 색 가방을 찾아 보이자 고개를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이날 상오 11시30분쯤 끈질긴 추궁에 김은 『경찰은 나가달라. 군수사관과 이야기하겠다』고 제의, 김 경위가 그 자리를 비켜주자 범행을 실토하기 시작했다.
이때 범인 김은 연대장 실에서 범행에 썼던 45구경 권총을 꺼내 주고 범행을 전후한 행적을 털어놓았다.
김 병장은 권총과 함께 실탄8발을 훔쳐 외출, 성남시 집에서 하룻밤을 잔 뒤 공진사 전당포로 범행하러 갈 때는 서울역 앞 모 다방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었다고 했다.
김 병장은 은행강도를 저지른 뒤 부대로 돌아가자 즉시 권총과 남은 실탄6발을 제자리에 놓아두고 평소와 다름없이 근무했다고 자백했다.
또 범행당일 홍 양과 법환리에 여관방을 잡은 김 병장은 강탈한 74만5천 원을 가방에서 꺼내 63만원을 홍 양에게 건네주면서 『일본에서 잘사는 큰아버지가 우리가족 모르게 보내준 돈이다. 집에 갖다 맡기면 다 써버릴 테니 잘 보관했다가 제대 후 결혼비용으로 쓰자』며 홍 양을 속였다고 했다.
김 병장으로부터 범행일체를 자백 받기까지 김 경위 「팀」에는 낮과 밤이 없었다.
때로는 거짓 제보자에게 걸려 『결정적인 제보를 하겠다』는 말에 수사 비를 사기 당하기도 했다.『남대문시장 안에 무기판매자가 있다』는 허위제보에 속아 현금 8만원을 구입비용으로 주었다가 떼인 것을 비롯, 교통비 조로2천∼3천 원씩 뜯기기는 예사였다는 것이다.
또 사건을 쫓느라고 사건 후 집에 들어간 것은 모두 5일뿐이었다.
식사도 수사본부가 있는 동대문경찰서구내식당에서 했으며 양말과 내의는 남들의 눈을 피해새벽2∼3시에 경찰서화장실에서 자신들이 빨아 입었다는 것이다.
이번에 특진된 김 경위는 경찰경력 28년. 부인과 3남2녀를 두고 있다. 김 경장은 10년 경력에 부인과 2남2녀, 공 순경은 13년 경력에 부인과 ,1남1녀를 둔 가장이다. 이들은 모두 그동안 8∼13회의 표창을 받은 모범경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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