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당 도장 어느 것이 합법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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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31일 선관위서 유권판정>
서로 「합법」임을 주장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판정을 기다리게된 신민당 주류·비주류의 두개 전당대회는 31일 선관위전체회의에서 「시」와 「비」가 가려지게 됐다.
시비를 가리는 기준의 하나는 주류·비주류가 낸 당대표변경등록서류에 찍은 「신민당인」과 「신민당총재인」(주류) 및 「신민당대표최고위원인」(비주류)-.
이른바 「옥새」시비는 주류가 자기들 도장이 진짜고, 비주류가 찍은 도장은 위조라고 주장하고 있고 비주류 측에선 『합법절차에 의해 대회가 치러졌으므로 우리 쪽 도장은 흠 없는 개인』이라고 맞서있어 당권연장전의 불씨가 돼있다.
주류 측은 25일 대회 후 선관위에 가면서 도장을 탈취 당할까봐 어느 실무자는 양말 속에 넣고 다녔다는 것. 비주류는 급히 당인과 대표최고위원인을 나무로 파 시간 안에 서류를 접수시키느라 실무자들이 땀을 뺐다.

<아무나 개인계 낼 수 있나>
『소집 공고된 시간과 장소에서 대회를 치른 것은 우리가 유리한 점이고 「옥새」가 없는 것은 우리가 불리한 점이다』-.
비주류의 정해영 의원은 모 중앙선관위원에게 개인적으로 물어본 결과를 「메모」지에 항목을 붙여 정리해놓고 득·실점을 가렸다.
주류 측은 장소와 시간문제에서 수세인 반면 『우리는 선관위에 등록된 「옥새」를 갖고 있다며 옥새 시비에선 승산을 점치고 있다.
주류의 한병채 율사는 『개인도 인장을 소유할 권한 있는 자만이 인감변경신청을 할 수 있듯이 「옥새」에 대한 개인계도 아무나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며 비주류의 대회가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비주류의 김원만 대표최고위원은 『개인도장도 분실하거나 도난 당하면 인감을 고치는 것』이라며 『합법적으로 전당대회를 마친 측에 옥새는 내놓아야한다』고 했다.
비주류측 율사인 이택돈 의원은 『선관위의 선례를 보면 구대표명의로 등록을 할 수 없을 때는 당인을 새로 새겨 신대표의 이름으로 등록할 수 있다』고 「옥새」문제에 대해 비주류측이 유리한 점들을 열거하고 있다.

<민중·신한당 합당 때 사용>
문제의 「옥새」는 흔히 관청과 회사에서 사용하는 5㎝정방형 호박도장에 불과한 것.
평소에는 조그만 철상자에 다른 도장들과 함께 신민당 중앙당사 2층 총무국 간사의 때묻은 「캐비닛」 속에 갇혀있다.
한민당 시절부터 야당사를 따지면 이번 「옥새」는 7번째로 선관위에 등록돼 제1야당을 대표하고 있는 셈.
지난 67년2월11일 민중당과 신한당이 합쳐 신민당으로 태어날 때 함께 햇빛을 본 것. 유진산 전 신민당당수가 최초의 손때를 입혔고 지난 72년에는 고 유진산씨를 당수자리에 앉히는데 공을 세운 전력이 있다.
그래서 전당대회하면, 표, 그 다음이 「옥새」의 행방탐색이 긴급 업무.
72년 전당대회땐 김홍일 당수대행 쪽이었던 김재광 총무가 사람을 당사에 보내 예비군관계서류를 떼게 하면서 옥새보존상황을 탐지했던 일도 있었다는 것.
이번에도 「옥새」쟁탈전이 한바탕 벌어졌다. 22일 하오 중앙당사를 폭력 점거한 비주류의 지휘당원 측이 제일 먼저 황명수 총무국장에게 내놓으라고 요구한 것이 이 「옥새」.
그 때는 이미 「옥새」가 「캐비닛」을 벗어나 당사 어느 한 비밀「아지트」에 임시로 주소변경을 한 뒤. 황 국장에 따르면 이보다 한 달 전 「옥새」는 벌써 당사 어느 구석에 숨겨져 있었다는데 비밀탄로가 두려운지 그곳은 절대 묵비.

<법적사항 아닌 인영신고>
정당법에는 정당의 당인이나 대표자 직인에 관한 규정이 있다. 다만 정당관리업무를 맡고 있는 선관위가 관리업무상 인영을 신고 받고 있다.
중앙선관위는 정당의 창당준비위원회인과 대표자 직인, 창단된 정당의 당인과 대표자 직인을 신고 받아 「인영대장」을 비치하고 있다.
「인영대장」은 정당이나 창당준비위원회가 제출하는 각종 문서에 찍혀있는 도장을 등록인영과 대조해서 문서의 진부를 가리려는 것이 주목적.
그러나 인영신고가 법적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신고가 없다는 이유로 정당의 결성신고나 등록신청을 수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선관위해석이다(정당사무실무편람).
정당의 개인신고는 이미 신고된 당인이나 대표자직인이 분실됐거나 당명이 바뀌었을 경우에 내는 것이 일반 관례.
이 경우 개인신고를 받은 선관위가 이미 받아 놓은 인영대장의 인영을 말소하고 새로운 인영을 등록시키고 있다.
신민당 비주류가 이번에 낸 개인계는 전례 없는 특수「케이스」.
당대표의 직인이 엄연히 존재해 있고 그 직인을 가진 주류 측이 당대표행사를 하는 가운데 개인계가 제출된 것이기 때문이다. 비주류는 『최고위원제로 바꾼 것』을 개인이유로 내놓고 있으나 과연 수리를 할 것인지 관심사다.

<문제 있는 세 번째 개인계>
중앙선관위가 문제 있는 개인계를 접수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
지난 63년 당시 야당으로 처음 창당된 민정당 대표의 직인을 바꾼 것이 첫 예.
탈당인사 측에서 직인을 가져가 당시 김병노 대표지도위원이 직접 불편한 몸을 이끌고 중앙선관위에 개인계를 냈다.
선관위는 이 때에도 정당의 도장에 관한 법규가 없어 인영이나 개인신청을 본인이 직접 하도록 내규를 정했다는 것. 다음은 지난 72년의 이른바 시민회관대회와 효창동대회사건 때의 일.
당권을 쥐지 않았던 진산계는 유청 전당대회의장의 대회연기공고를 무시하고 9월26일 당초 예정됐던 시민회관에서 자파 대의원만으로 대회를 치르고 즉각 선관위에 대표자변경등록을 신청했다. 진산계는 당시 김형일 사무총장·유치송 사무차장의 협조를 얻어 신민당인과 대표 직인을 빼냈다가 사용.
김홍일 당수파 등 반진산계는 다음날 효창동 김 당수댁에서 대회를 다시 열어 선관위에 개인계와 함께 당수확인신청을 제출. 이 때 개인신청의 사유는 「분실」이었다. 선관위는 이미 당대표변경등록신청을 접수했다는 이유로 김 당수 측의 개인계를 접수조차 하지 안 했다. 이것이 개인계를 거절한 첫「케이스」. 이런 전례에 따른다면 먼저 제출한 주류 쪽에 더 유리하다고 볼 수 있으나 이번에 양쪽 다 접수된 점이 전과 다르다.
개인에 관한 선관위의 해석선례를 보면 정당의 지구당위원장 직인을 전위원장이 가지고 쥐었을 때 지구당부위원장이 위원장 권한대행으로 개인신고가 가능하다고 해석한 일도 있다(66·1·9).
이번 신민당 주류·비주류의 옥새시비는 다른 요건과 함께 다루어 질 한 대목에 불과하지만 당사자들로서는 어느 한쪽의 승리에도 불복할 자세여서 옥새시비는 법원판결의 대상으로 오를 가능성도 없지 않다. <조남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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