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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지키던 작가들 다시 활동 창작집 출간도 눈에 띄게 많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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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최근 우리 문단에서는 두 가지 두드러진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창작집이 활발하게 나오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동안 작품 활동이 뜸했던 몇몇 작가들이 열심히 작품을 쓰고 있다는 것이지요. 황순원 최정희 이범선 서기원 홍성원 서정인 이정환 백도기씨 등의 작품집들이 모두 최근에 나온 것들이고 이달에 한무숙 이호철 하근찬씨의 작품들을 대할 수 있었던 것은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김=한무숙씨의 『어둠에 갇힌 불꽃들』(문학사상)은 소외된 맹인의 세계를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고결한 정신이 독자의 심금을 잘 울려주고 있어요. 불행한 자에 대한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공감력, 진지하고 정확한 서술 같은 것이 장점으로 나타나 있지만 사건성의 희박으로 등장 인물의 유기적 결합이 부족한 듯 느껴졌어요. 말하자면 구성이 지나치게 「논픽션」적이라고 할까요.
김=이호철씨의 『생일초대』(문학사상)는 최근의 그의 심정이 잘 드러나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은 『정황이 나빠지면 사람도 살아 남으려고 나빠진다』는 작품 속 한 인물의 술회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이 작품을 읽어보니까 그의 장기로 통해온 인물 성격 묘사가 무디어지고 결론을 너무 서둘러 제시하려다 보니까 작품도 재미없어지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김=저는 설득력이 이호철씨다운 입심으로 잘 용해된 작품으로 보았어요. 이 작품을 보면 이 작가가 겪은 50년대 초반의 전상이 아직도 강력한 문학적 출구를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지요 삶의 질긴 의욕이 경제적 안정 위에 섰을 때 그 물질의 윤택을 거부하고 오히려 삶의 탄력성이랄까 긴장감의 회복을 갈구하고 있음을 이 작품은 시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지요.
김=하근찬씨의 『남을 위한 땅』(월간중앙)은 말하자면 새마을 교본에나 나옴직한 애국소설인데 작자가 너무 전면에 나와 설교 같은 것을 하니까 남을 위해 땀흘리는 사람이 진짜 애국자라는 좋은 교훈도 작가 자신만의 고함소리로만, 들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만이 있습니다.
김=김주영씨는 『어디가 아프십니까』(문학사상) 『옛날이야기』(한국문학) 2편의 작품을 발표했는데 전자가 비속어의 직유법으로 마치 송진 껌을 씹는 맛을 주는 듯한 지나친 작위와 발상법에 근거를 두고 있는 반면, 후자는 미국 원조권에 들어있는 약소국가의 비애를 「유머러스」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미군 부대와 그 부대에 기식하는 매춘부, 그리고 그들 중간에 처해있는 감시원들과의 삼각 관계를 통해 오늘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공생이라는 타협이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가를 잘 드러내고 있지요.
김=신인의 작품으로는 박범신씨의 『식구』(월간중앙)를 주의 깊게 읽었습니다. 생활에 시달리는 한 가족의 이야기인데 간결하면서도 호소력이 있는 점에 호감이 가더군요. 돈 30만원 때문에 목숨을 버릴 수도 있는 아버지, 국민학교도 못 나와 운전필기시험도 못 치를 처지인 아들, 재봉일을 하다가 사생아를 낳고 일터마저 잃어버린 딸…들의 모습이 선연하게 나타나고 있어요.
다만 마지막의 설명 부분이 지나치게 친절해서 오히려 작품의 여운을 없애는 점이 흠으로 지적되겠습니다.
김=이달의 소설을 읽고 같은 작가의 입장에서 함께 생각해야 할 문제는 첫째 쓰지 않을 수 없다는 치열성이 부족하다는 점, 둘째 삶을 보는 눈이 안일하고 피상적이라는 점, 셋째 「테크닉」이랄까 구성이나 문장의 세련미가 부족하다는 점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대담>김현(서울대 교수·논평가) 김원일(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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