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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구계의 명「센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김영일 감독(34)은 한국남자농구의 기념비적인 불멸의 명「센터」였다.
그는 선수로서의 「스타·플레이어」였을 뿐 아니라 지도자로서도 소질을 잠깐 발휘하다가 끝내 날개를 마음껏 펼쳐보지도 못하고 비명에 가고 말았다.
선수로서의 김영일은 69년12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5회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에서 김영기와 호흡을 맞춰 우승, 한국농구 60년 사상 처음으로 「아시아」를 제패하게 했고 70년 제6회「아시아」경기대회에서도「이스라엘」을 꺾고 우승, 한국남자를 「아시아」 정상에 올리는데 획기적인 공헌을 했다.
그는 경기고를 졸업한 후 연세대에 입학하면서부터 농구를 시작,2년 만에 대표선수로 발탁된 대기만성형의 농구천재였다.
그는 62년 제4회 「아시아」경기대회부터 대표선수로 활약,9년 동안「올림픽」2회(64년 동경 및68년「멕시코」)「유니버시아드」1회(67년 동경)세계선수권대회1회(69년「유고」)「아시아」경기대회 2회,「아시아」선수권대회 4회 등 10회의 국제중요 대회에 출전했다.
특히 13회의 해외원정을 하는 동안 4년 간「팀」주장을 맡았고 「멕시코·올림픽」때는 한국선수단의 늠름한 기수로서 한국남아의 기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신장 188cm의「센터」인 그는 연대·공군·한은에서 활약하는 동안 화려한 「골·게터」로서 보다 재치와 머리로써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팀」의 밑거름 경기를 펼쳐온 대표적 두뇌선수였다.
은퇴 후 한은과 71년 대표 「팀」「코치」를 맡은 김영일은 김영기씨의 뒤를 잇는 모범지도자로서도 촉망을 받아왔다.
30년대 연전과 전 조선축구「팀」의 주전CF로서 명성을 떨쳤던 김성우씨(64·재미)의 2남2녀 중 장남으로 어머니 김련경여사(62·이전 음악과 졸)는 탁구선수, 누나 김영보씨(36)와 누이동생 김영왕씨(32)는 경기여고·이대의 수영선수, 동생 김영백씨(29)는 연대농구선수로 그의 집안은 모두가 「스포츠」선수.
70년12월 은퇴와 함께 이화여고·이대의 육상단거리선수였던 장영희(29)양과 결혼,2녀를 두고있다.

<농구관계자들 침울>
한은 김영일 감독의 의문의 변사사건은 종별농구대회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으로 농구관계자들을 침울하게 만들었다.
한은 「팀」은 23일 하오 전남대부속병원에 고 김영일 감독의 빈소를 차려놓고 선수들이 밤을 새웠다.
고인과 선수생활을 같이한 김인건씨가 다녀갔지만 빈소는 쓸쓸하기 짝이 없었다.
『농구에 환멸을 느꼈다』고 만년장「호텔」(광주시대인동)을 뛰쳐 나갔다 변사를 당한 김 감독의 죽음은 이번 대회에서 의욕상실에서 헤매고 있는 금융「팀」들의 고민의 일단이기도 하다는 얘기다.
한편 김 감독의 돌연한 사망으로 전하청의 우승이 확정된 남자일반부의 마지막「게임」인 한은-산은의 대전은 한은의 기권으로 유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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