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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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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4월은 만우절로 시작한다. 거짓말이 아니라 무해한 농담을 허용하는 날이다. 농담에도 농담(濃淡·짙음과 옅음)이 있다는 말은 기억할 만한 조언이다. 섣불리 했다가는 엘리엇의 시에서처럼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 될 수도 있다. 유머 다음에 센스라는 말이 따라붙는 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때는 7080시대. 신촌의 대학축제 무대에 오른 개그맨이 ‘출신’을 밝힌다. “저도 연대 나왔어요.” 학생들이 환성을 지르는 바람에 뒤이어 말한 내용은 소음에 묻힌다. “23연대에서 행정병 했거든요.”

 이게 화근이 될 줄이야. 23연대 출신의 그 개그맨은 한동안 학력 변조자로 구설에 올랐다. 농담이 아니라 불찰이 유죄였다. 인터넷 개인정보에 그 개그맨은 한동안 연대 출신이라고 떠 있었던 것이다. 그가 그런 사실을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그가 연대 출신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얼마나 있었는지도 가늠할 도리가 없다. 그가 정보 오류로 반사이익을 챙겼다는 증거 또한 밝혀진 게 없다. 그는 상당히 억울했을 터이다. “세상에 농담도 못하나?” 그러나 세상은 세월을 이기지 못한다. 결국 그는 유명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내야 하는 세금, 즉 유명세를 납부하고야 말았다. 착오는 바로잡았지만 명예까지 붙잡진 못했다.

 아파트 현관에 이런 공고문이 붙어 있다. 몇 해 전 4월에도 비슷한 게 붙어 있었다. “미신고자 및 거짓신고자는 자진 신고하세요. 과태료 부과 금액의 2분의 1을 경감해 드립니다.” 신고기간은 4월 말까지다. 제목을 보니 주민등록 일제정리 안내 공고문이다. 별 상관도 없는데 며칠 전에 본 뉴스 장면이 오버랩된다. 고위직 공무원의 인사청문회. ‘점잖은’ 분 망신 주기 기간으로 굳어진 지 오래다. 하지만 ‘황무지에도 라일락꽃은 피는’ 법. 청문회는 대국민 캠페인의 성격도 살짝 있다. 초등학교 때 이미 귀에 닳도록 익힌 내용이다. “신고할 건 신고하고 납부할 건 납부하자. 그것도 제때에 하자. 그리고 이왕이면 법을 잘 지키자.” 차제에 4월을 ‘고백기간’으로 설정해 문제가 될 만한 과거 행적을 자진 신고하도록 유도하면 어떨까. 귀찮긴 하지만 인터넷의 바다에 떠다니는 부유물도 깔끔하게 걷어내는 게 좋을 듯하다.

 ‘호세마리아 신부의 길’이라는 영화는 첫 장면이 인상적이다. 오스카 와일드가 남긴 말로 화면이 시작된다. 4월의 금언으로 손색이 없다. “모든 성인에게는 과거가 있고 모든 죄인에게는 미래가 있다.”

주철환 아주대 교수 문화콘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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