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파벌 싸움부터 없애야-한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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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부는 국어 순화 운동을 범 국민화하고 보다 장기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문교부 안에 직속 상설 기구로 「국어연구원」(가칭)을 설치하는 한편, 문교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어순화추진위원회」를 별도 구성하기로 했다. 이 같은 두 기구의 설립에 대해 올바른 방향과 문젯점을 관계 학자로부터 종합했다.
국어 연구 기관으로는 이미 1907년 구한말 학부 안에 설치된 국문연구소(소장 윤치호)가 최초로 있었다. 당시 노윤적·주시경·이능화 등이 절차 법안 등을 만들었으나 나라를 잃으면서(19l1년)빛을 못보고 연구소도 해체됐다. 일제하에서는 조선어학회가 있었으나 민간 단체였을 뿐이다. 해방 후 문교부 안에 국어 심의회가 설치됐으나 연구 기관의 역할은 하지 못했다. 민간 연구 기관으로는 현재 한글학회·국어학회·국어국문학회 등이 있으나 재정·연구원 문제로 거의 성과가 없는 실정이다.
이 같은 연구 단체에도 불구, 국어 정책이 혼미를 거듭하고 실패했던 가장 큰 이유를 이기문 교수(서울대)는 전담 기구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허웅 교수(국어학·서울대)는 해방 후 설립된 한글학회 등의 국어 연구 활동에 정부가 지나치게 몰이해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도 민간단체의 산발적인 국어 문제 지적이 있었으나 지속적이지 못했던 것이 오늘의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열쇠가 상설 연구소의 설립이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학자는 이번 문교부 계획을 환영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밝혀진 문교부 계획은 많은 문젯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관계 학자들의 중론.
첫째가 연구소 소속의 문제. 「프랑스」나 일본처럼 국가 최고 권부의 직속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국무총리 관장 하에 언어·문자 정책을 추진해야 된다는 것이다.
남광우 교수(국어학·인하대)는 언어·문자 정책은 국가의 백년대계라고 말하고 대통령 직속 하에 국어 전담 기구를 설치,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어야 된다고 말했다.
둘째 문제는 연구원의 인원 구성 문제. 현재의 국어학계는 한글 전용과 이를 반대하는 학자들로 나뉘어 사실상 양분된 상태다. 이들은 비단 한글 전용뿐만 아니라 맞춤법·표준어 문제·국어교육 등의 문제에도 서로 다른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따라서 신설되는 「국어연구원」이 이들을 모두 수용할 경우 연구에 힘쓰고 결과를 따르기보다는 파벌 작용을 양성화시키는 결과가 된다는 우려다. 남 교수는 참가 학자들이 양식에 따라 사안을 극단적으로 주장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관리 주도형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현재 대학교수에 대한 겸직 금지 규정도 국어연구원의 경우 새로운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어연구원의 활동에 대해 학자들은 학계의 의견이 일치된 문제(국어순화·외래어 남용 규제 등)부터 하나씩 해결해 가는 것이 정도라고 제시했다. 강신항 교수(성대)는 국어연구원 외에서 「한글파」 「한자파」의 토론이 아닌 싸움이 없어야 기대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학계의 의견이 일치된 문제가 해결된 후에는 점차로 활동을 확대, 맞춤법·외래어표기법·표준말의 수정·새로운 낱말의 개발·상용 한자의 제정과 교육·사전편찬·발음정리 등이 당면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성급히 해결하려는 과잉 의욕은 경계해야 된다고 주의했다.
고대 김민수 교수(국어학)는 연구원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국어 문제를 전반적으로 기민하게 다루는 「프랑스」의 「아카데미·프랑세즈」와 일본의 국립 국어 연구소를 예로 들었다. 김 교수는 언어 정책에는 시행착오가 있을 수 없다고 말하고 정책적으로 실시할 경우 그 후유증과 효과를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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