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 중심의 연구 활발한|한국 정치학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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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최근 우리나라 정치학계는 오랜 침체를 벗어나 새로운 학문적 시도로 활기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경향이 해방 후 정치학의 대상에서 주류를 이뤄 오던 사례 연구를 지양, 여러 사례에서 일반 이론을 찾아내는 새로운 경향이 다수의 학자들에 의해 시도되고 있다.
작년 여름 이후 두드러지기 시작한 이 같은 경향은 국제 정치에 있어서의 「협상이론」, 국제체제의 「구조이론」, 「연계이론」을 중심으로 하는 북한의 대결 정책 연구, 국제분쟁을 다루는 「갈등 이론」 등의 논문이 매달 월례 발표회에서 1편 이상 소개되고 있는 것으로도 엿볼 수 있다. 이 경향 논문집에도 그대로 반영돼 국제 정치 학회가 발행하는 금년도 『국제정치론총』(5월7일 발행)에는 12편의 논문 중 『「루카치」의 실증과학주의 이론』을 비롯해 『국제 관계 이론에 있어서 인식 거리』 등 7편의 이론 관계 논문들이 수록되고 있다. 특히 부록에는 『국제 정치 이론에 관한 문헌 해제』를 함으로써 사례로부터 일반 이론의 추출을 시도하는 학자들에게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이 같은 새로운 연구 경향은 방법론에도 영향을 미쳐 역사적 사건에 대한 해석에서 종래의 역사학적 접근 방법보다는 현대 정치 이론에 의한 분석이 시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상반기 중 한국 정치 학회 대회의 경우로 개항 백년에 대한 정치학적 분석이 주제이다.
이제까지 많은 정치학자가 개항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지만 정치학자의 논문인지, 국사학자의 논문인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이의 가장 큰 원인은 대부분 현대 정치 이론에 대한 「트레이닝」 부족으로 과거의 정치적 사건에 대한 해석에 역사학적인 접근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시도되는 한국정치학회(회장 차기벽)의 개항 백년「세미나」에는 개항기의 한국 정치를 국제정치·비교정치·정치사상 등의 3개 측면으로 나누어 현대 정치 이론에 입각한 분석을 모색한다. 차기벽 교수(성대)는 『이번 「세미나」에서 이제 까지 개항을 역사학적인 방법으로 연구하던 학자들을 제외했다』고 밝히고 순수 정치 이론에 의한 개항기의 정치 상황 분석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한편 일반 이론 연구의 증가와 함께 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철학의 연구가 활발한 것도 최근의 특색이다. 「홋셀」의 현상학 연구를 비롯해 「정의」문제를 다룬 본문들이 중점적으로 나오고 있다. 서울대 김학준 교수(정치학)는 「워터게이트」사건과 관련, 미국학계에 정의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철학 연구가 성행하는 까닭도 있지만 정의의 문제는 우리 학계를 포함해 세계적인 관심사라고 설명했다. 특히 정치철학에 대한 관심은 강의에도 반영돼 서울대 정치사상사 강좌의 경우, 단일 강좌에 6백50명의 학생이 수강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정치학자들은 학계에 이론 연구가 보편화되고 역사학적인 접근 방법에서 탈피하는 것을 정치학계의 성장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소장학자 「그룹」에서는 현대 정치 이론의 도입에 따른 학계의 「세대 교체」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정치 이론의 연구와 방법론에 대한 개선도 중요하지만 외국의 문제를 다루기보다는 한국적인 정치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정치철학의 연구도 시급하다고 의견을 말하고 있다. <임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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