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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가 많아도 너무 많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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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명색이 방송 담당 기자인데도 잘 모르는 드라마가 많다. 언제 시작했다 언제 끝났는지 모르는, 제목조차 생소한 드라마가 한둘이 아니다. 어려서부터 모든 TV드라마를 섭렵해 ‘드라마 매니어’를 자부하는데도 그렇다. 한창 핫하다는 ‘밀회’나 ‘신의 선물’ ‘쓰리데이즈’ ‘정도전’이나 ‘기황후’ 같은 몇 편을 빼고 나면 존재감이 없다. 솔직히 내용도 거기서 거기 비슷한 얘기들이다.

 우리 TV 편성은 드라마를 초특급 우대한다. ‘드라마 중심’ 혹은 ‘드라마 의존’ 편성이라 할만하다. 숨 돌릴 새 없이 채널을 바꾸어 가며 드라마에서 드라마로 꼬리를 문다. 상대의 뉴스나 교양에 드라마로 맞불을 놓는다. 지상파 3사만 한정시켜 본다면, 오전 7시50분 SBS→8시30분 MBC→9시 KBS2로 아침드라마 릴레이다. 오후는 7시15분 MBC, 또는 7시20분 SBS에서 시작해 7시50분 KBS2→8시25분 KBS1→8시55분 MBC→10시 3사 미니시리즈로 이어진다. 거기에 밤 11시대 케이블드라마까지 치면 하루에 9편의 새 드라마를 쭉 이어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드라마 왕국의 토대는 당연히 시청률이겠다. 뭘 틀어도 드라마는 기본은 한다는 믿음이다. 그런데 요즘 이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 윤계상, 한지혜 주연의 KBS 미니시리즈 ‘태양은 가득히’는 2%대 시청률이다. KBS는 올 초 종영한 장근석, 아이유 주연의 ‘예쁜 남자’ 때도 2%대 시청률을 기록한 바 있다.

 시청률이 많이 나온다고 해서 장땡도 아닌 것 같다. 한 프로듀서는 ‘별에서 온 그대’가 시청률은 엄청 높았지만 지금까지 방송사에 돌아온 건 별로 없다고 푸념했다. 중국발 한류를 일으켰다지만 중국 판권을 판매한 것은 제작사고, 그나마 온라인 판권이라 수익도 그다지 높지 않다고 했다. 결국 최고 수혜자는 소수 배우란 얘기다. 중국 TV 오락 프로 한 번 출연에 5억원의 출연료를 받은 김수현이나 종영 후 각종 광고를 휩쓸고 있는 전지현 등이다. 드라마 속 패션쇼에 준하는 의상협찬(PPL) 수익도 배우가 가져갔다.

 드라마가 많아도 너무 많다는 얘기는 이젠 굶으면 배고프다는 말만큼 진부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또 해야겠다. 많아도 너무 많다. 뻔한 내용에 제작비는 많이 들고 소수 스타만 배불리는 구조라면 뭔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편수를 줄이든지, 아니면 새로운 제작 방식이 필요하다. 특히 수신료 인상을 얘기하는 공영방송 KBS는 더더욱 그렇다.

양성희 문화스포츠 부문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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