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파리·밀라노서 동시에 러브콜 … 인기 많은가 봐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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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복 브랜드 ‘준지’(Juun.J)가 일을 냈다. 미국 뉴욕·LA,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밀라노, 영국 런던, 중국 베이징·상하이, 홍콩, 일본 도쿄, 호주 시드니, 서울 등 세계 9개국에서 준지를 초청해 임시 매장을 연다. 6월 13일부터 3주 동안 각국 주요 도시의 대표 패션 매장 12곳이 대상이다. 특히 이 기간은 내년 봄·여름 남성 패션 트렌드를 선보이는 패션쇼가 파리·밀라노에서 열리는, 그야말로 세계 남성 패션 축제기간이다.

유행에 가장 민감한 사람들이 이들 도시에 북적대는 최성수기, 내로라하는 매장들이 동시에 특정 디자이너 임시 매장을 여는 건 매우 드문 경우다. 프랑스 파리 남성복 컬렉션에 준지 패션쇼를 선보인 지 8년째, 자신의 브랜드를 시작한 지 15년째인 디자이너 정욱준(47·사진)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 상무가 준지 열풍의 주인공이다.

정 상무는 지난해 에르메스·루이뷔통·아르마니 등 세계 정상급 브랜드가 속한 파리의상조합 정회원이 됐다. 2009년엔 프랑스 브랜드 샤넬의 창조부문 책임자 칼 라거펠트가 준지 옷을 입고 샤넬 패션쇼 무대에 올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준지 스토리를 들어봤다.

강승민 기자

- 패션 편집매장은 유행을 선도하는 브랜드만 골라서 모아 파는 곳이다. 뉴욕·파리·밀라노 등 패션 도시에서도 트렌드에 제일 민감하다. 준지를 택한 이유가 뭘까.

 “뉴욕 바니스 백화점, 파리 편집매장 레클레르에서 자신들 매장에서만 파는 독점 상품 공급 요청을 해 왔다. 한데 준지는 이미 30여 개 나라 65개 매장에 진출해 있다. 게다가 뉴욕·파리에선 바니스·레클레르의 경쟁 매장에서도 준지 옷을 판다. 해서 독점 상품보단 임시 매장이 어떻겠느냐고 역으로 제안했다. 그리곤 다른 도시 대표 매장들에 같은 제안을 보내 반응을 살폈다. 입점 브랜드를 까다롭게 고르기로 유명한 매장들이라 반신반의했는데 다행히 모두 제안을 받아줬다. 준지가 인기가 많긴 한가 보다.”(웃음)

 - 2012년 초 파리 컬렉션에서 낸 ‘네오프렌’ 소재 스웨트셔츠는 준지 브랜드를 널리 알린 히트 상품이다. 검색 사이트 구글에선 준지를 치면 네오프렌이 연관 검색어로 뜬다.

 “기쁘지만 한편으론 아쉽다. 소비자는 새로운 걸 원한다. 프린트가 화려한, 거리 감성의 자유로운 패션이 유행인 때였다. 다들 큼지막한 로고와 눈에 띄는 장식 프린트로 옷을 만들어 냈다. ‘어떻게든 달라야 하는데’라는 고심 끝에 나온 게 네오프렌이다. 흔히 ‘잠수복 천’이라 부르는 합성고무다. 통풍과 땀 배출이 힘든 탓에 일상 패션 소재로 생각지 않던 거였다. 장점도 있다. 프린트를 새기면 훨씬 선명하고 실사에 가깝게 표현할 수 있는 소재다. 소재 개발 회사와 끊임없이 연구하고 토론한 끝에 네오프렌 스웨트셔츠를 낼 수 있었다. 한 달 뒤 열린 프랑스 유명 브랜드 여성복 패션쇼에도 비슷한 게 나와서 크게 히트했다. 준지보다 인지도나 영업력 면에서 훨씬 규모 있는 브랜드였다. 준지가 그 정도 위상이었다면 더 엄청난 성공을 거뒀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다. 다음 히트작을 기대해 달라.”

 - 특이한 소재 위에 강렬한 프린트, 체형보다 훨씬 커 보이는 스웨트셔츠 같은 의상이 보통사람에겐 ‘멋지지만 어려운 옷’일 수 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프린트 자체가 의상 분위기 전체를 좌우하는 완성품이라고 여기면 된다. 하의나 장신구 등을 최대한 자제해 입으면 누구나 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 지난해 할리우드 영화 ‘헝거게임2’ 주연 등의 의상을 제작했다. 어떤 계기인가.

 “할리우드에서 각광받는 영화 의상 제작자 트리시 서머빌이 연락해 왔다. 아무런 인연도 없는데 준지를 알고 먼저 접촉해 온 거였다. 주연인 조시 허처슨 등 몇몇 남성 배역 의상을 제작했다. 예전에 ‘화산고’ ‘역도산’ 등 한국 영화 의상 작업에 참여한 적도 있었다. 이제 할리우드에서 직접 연락이 올 정도로 준지가 알려졌다는 게 기뻤다. 자랑이 또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팝가수 카니예 웨스트, 리한나도 공연 의상 제작을 의뢰했다. 리한나는 지난해 월드투어에서 준지 상하의를 입고 공연 무대에 섰다.”

 - 지난해 프랑스 파리의상조합 정회원이 됐다. 달라진 점은.

 “조합 쪽에선 이렇게 말한다. ‘정욱준은 한국인이자 파리지앵, 준지는 한국 브랜드면서 프랑스 브랜드’라고. 그들이 준지를 파리 컬렉션의 당당한 일원으로 대우해 준다는 얘기다. 파리 컬렉션 스케줄을 배정받을 때도 정회원에게 우선권이 있다.”

 - 디자이너로서 어려운 순간은 없었나.

 “난 개미형이다. 크게 성큼성큼 뛰는 게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전진하며 내일 계획을 세우고 꾸준히 일하는 타입이란 얘기다. 크게 저지르지 않으면 크게 실패할 일도 없다고 할까. 기업 브랜드 디자인실에서 근무하다 1999년 독립해 지금처럼 번화하지 않았던 강남 가로수길에서 6평짜리 매장으로 시작했다.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70만원. 가로수길 뒷골목 매장을 가로수길 쪽으로 이전하고, 1층만 쓰던 걸 2층까지 확장하고. 그러면서 서울 컬렉션에 나가 이름을 더 알렸다. 홈쇼핑에서 옷을 팔아 번 돈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 패션쇼를 연 게 2007년이다. ‘30엔 내 브랜드를, 40이 되면 파리 컬렉션에’라는 계획을 차근차근 실행에 옮겼다.”

 - 2011년 에버랜드(당시 제일모직)에서 영입 제안을 받고 합류했다. 올 1월 파리 패션쇼에선 삼성전자 갤럭시 노트 신상품을 준지 옷과 어울리게도 했다.

 “경영자·디자이너 두 역할을 다 하는 건 쉽지 않다. 다행스럽게도 난 창의성을 잃지 않으면서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드는 재주는 있는 편이다. 큰 기업엔 큰 지원 조직이 있어 더 적극적이고 전략적인 방법으로 브랜드를 전개할 수 있게 돼 좋다. 특히 출시도 안 된 갤럭시 노트 신상품이 준지 패션쇼에 오른 건 패션의 창의성, 미래지향적인 멋진 이미지가 첨단 전자제품과 훌륭하게 조화를 이룰 수 있단 걸 보여준 사례였다고 생각한다. 준지가 삼성전자와 협력할 정도로 가치 있는 브랜드라는 걸 세계 패션계에 보여준 계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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