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이사철에 웬 비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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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봄 이사철이 예년보다 빨리 끝날 것 같다. 예년 같으면 신혼부부를 중심으로 이사수요가 몰리는 3월부터 4월 중순까지 봄 이사철이지만 올해는 이사가 적은 홀수 해 인데다 이라크 전쟁까지 겹쳐 집을 구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다. 전셋값 상승률도 예년같지 않다.

서울.신도시 일대 부동산중개업계는 봄 이사철이 3월 초순부터 보름간 반짝 장세에 그쳐 기존 아파트 시장은 이미 비수기에 접어든 것으로 본다.

더욱이 4월부터 서울의 경우 아파트값과 역비례 관계를 보이는 새 아파트 입주량이 크게 늘어나 아파트 매매.전셋값이 동반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소형아파트가 몰려 있어 신혼부부 수요가 많은 서울 상계동.가양동.목동 일대에선 요즘 전세를 찾는 사람이 뜸하다.

노원구 상계동 LG부동산 김경숙 사장은 "올 봄에 이사를 가려는 사람 가운데 70% 정도는 3월 초순에 이미 계약을 끝낸 것으로 추정된다"며 "봄 이사철이 예상외로 빨리 끝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봄이사철 주요 수요층인 신혼부부들이 1~2년새 아파트 전셋값이 많이 오르자 상대적으로 값이 싼 다가구.다세대주택으로 돌리고 있는 것도 한 요인이라고 중개업자들은 분석한다.

그러나 강서구 가양2동 가양현대공인 김영희 부장은 "이곳 도시개발공사 20평형 미만 아파트 전세는 6천만~7천만원선이면 구할 수 있어 지난해 이맘때에는 신혼부부들이 많이 찾았는데 올해는 문의가 뜸하다"며 "경기가 나빠지자 결혼도 미루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라크 전쟁으로 불황이 장기화 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자 아파트 평수를 넓혀가려는 수요도 크게 줄고 있다. 서초구 잠원동 나산공인 이덕원 사장은 "4~5월에 큰 평형으로 이사를 준비했던 세입자들이 집주인과 재계약을 해 눌러앉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50평형 이상의 대형아파트 전세시장은 더욱 위축된 모습이다. 강남구 압구정.대치.도곡동 일대에선 대형아파트 전세가 1~2개월째 나가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압구정동 Y부동산 관계자는 "전세를 안고 아파트를 매입하려던 수요자가 전세가 나가지 않자 은행돈을 급히 빌려 잔금을 치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구리 토평지구 개미공인 김성채 사장은 "20~30평형대는 그럭저럭 거래가 되고 있으나 대형은 전세금을 내려도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전했다.

이사수요가 줄어들면서 전세매물도 부쩍 늘어나고 있다. 일산 신도시 주엽동 일대에선 30평형대와 40평형대 이상 전세매물이 모두 3백여개로 이달 초순에 비해 10% 이상 증가한 것으로 중개업자들은 추산한다.

주엽동 부영유승부동산 김철헌 사장은 "집주인들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자 전세보증금을 내리거나 도배나 장판을 무료로 해주겠다는 경우도 있다"며 "전세 매물적체가 심화하면 보합세를 보이고 있는 매매값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조사 결과 서울지역의 경우 2분기 아파트 입주량은 1만8천6백65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9배 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이 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전세나 매매수요가 위축된 가운데 공급이 늘어날 경우 4월부터는 매매값과 전셋값 모두 약보합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텐커뮤니티 정요한 사장은 "서울 송파.강남구 등 일부 지역의 재건축 이주 수요로 전셋값이 국지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은 있으나 전체 시장을 반전하는 요인으로는 작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원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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