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이 피기 시작했다. 진달래와 개나리가 한창이다. 남녘은 벚꽃이 만발해 있다고 한다.
꽃은 언제 보아도 사람의 마음을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
「콘크리트·정글」속에서 회색의 나날을 보내는 도시인들에겐 겨우 화원·안개 낀 창 너머로나 꽃구경을 한다. 그것도 온실에서 간신히 피워놓은 여린 꽃들이다.
그러나 봄은 우중충한 담장에도 답답한 골목길한 구석에도 건강한 꽃들을 피워 놓는다. 집집마다 좁은 마당이지만 개나리 한 그루, 목련 한 그루쯤은 소중히 키우고 있는 것 같다. 이 무렵이면 자랑스럽게 그 꽃들을 피워놓는 것을 보면 그래도 인간의 따뜻한 숨결을 느끼게 된다. 무표정하고 무뚝뚝하고 이악스러운 사람들이 그런 마당을 가진 집 속에 살고 있을 것 갈지는 않다.
구미의 도회지들을 여행해 보면 임립한「아파트」군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때로는 사람들도 보이지 않고 스산한 기분마저 들게 한다. 그러나 그 막막한「빌딩」틀의 창변엔 저마다 조그만 화원들을 꾸며놓고 있다. 우선 파릇파릇한 녹색의 자연에 친선 시선이 닿으면 여간 반갑지 않다. 공연히 긴장된 마음도 절로 풀린다. 싱싱한 꽃들이 피어있으면 그런 기분은 더 할 나위 없다. 비로소 사람의 미소와 표정을 본 듯 싶어 마음이 가라앉는 것이다.
일본의 지하철을 타면 연녹색의 조그만「포스터」들이 붙어있는 것을 보게된다. 『워크·인·그린, 토크·인·그린』-이라는「캐치·프레이즈」가 적혀있다. 녹색의 자연 속을 걸으며, 그 속에서 대화를 나누자는 뜻이다.
자연의 빛깔은 사람의 마음도 푸르게 만든다. 더구나 꽃들은 침묵한 가운데서도 우리에게 평화를, 안정을, 그리고 인정을 교훈하는 것 같다.
영국의 영화감독「데이비드·린」의 작품들을 보면 언제나 무슨 꽃이 등장한다. 영화「닥터·지바고」는 그 음산한 혁명기의「러시아」사회를 배경으로 하고있으면서도 수선화가 피어있는 광경을「스케치」하고 있다.
「린」이 감독한『라이언즈·도터』라는 영화도「아일랜드」의 종교전쟁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그 역시 음산한 분위기 속에서도 백합화는 여간 인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꽃은 모든 사람에게 위안과 희망을 준다. 병상에 누워있는 사람은 꽃 한 송이에서도 생명의 기쁨을 느낀다.
바로 그 자연의 선물을 만끽할 수 있는 이 봄철에 한 그루의 나무도 가꾸지 않고 사는 사람들은 그만큼 생활의 즐거움도 잃고 있는 셈이다. 우리의 일상은 하다못해 조그만 화분 하나를 화창한 햇볕이 드는 창 변에 내놓는 마음의 여유에서도 기쁨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