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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을 진단 한다|수익성 없는 기본재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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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기초가 튼튼치 못한 건물은 약간의 충격에도 금이 가거나 기울기 쉬운법. 사학이 겪고있는 오늘의 운영난은 법인 기본재산의 빈약과 비수익성이 가강 큰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재산빈약은 농지개혁과 학교실립인가 남발이 빚은 것. 즉, 해방전에 선립된 학교는 국토분단과 농지개혁으로 많은 재산을 잃었고, 해방후에 세워진 학교는 상당수가 당국의 선립인가 남발로 처음부터 빈약한 재산상태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우선 50년초에 단행된 농지개혁으로 각 사학재단은 당시만 해도 소유재산 중 가장 큰 수익성재산이었던 논·밭을 1년간 수확량의 3백%분의 농지증권을 보상금으로 받고 고스란히 정부에 넘겨줘야만 했다. 당시 전국 3백34개 문교재단 (학교법인등 교육관계재단)이 상실 (?)한 농지는 논4천4백64만명, 밭 1천2백36만명등 모두 5천7백만평. 서울B고교 J교장은 그때일을 이렇게 말한다. 『이학교는 일제때 내땅 3만7천평과 기증지 46만평등 농지 49만7천평으로 출발했다. 농지에서 나오는 생산물로 60%가 넘는 재학생들에게 수업료 면제혜택을 줄 수 있었으나 농지개혁이후 재단이 몰락하다시피했다』 토지댓가로 받은 보상금만으로는 학교운영이 되지 않았던 것. 사학의 전적인 공납금의 존사(史)는 여기서부터 비롯됐다는 것이다.
사학경영자들은 농지개혁으로 어려워진 학교재정을 타개하기위해 골몰하던 중 대한교과서주식회사 (현재의 국정교과서회사)를 설립하기로 뜻을 모았다. 회사가 창립된 것은 52년3월 부산피난시절이었다. 7O여개의 사학법인들이 청부에서 받은 농지증권을 팔아 모은돈 30억원 (당시화폐단위) 과정부가 원조받아 기증한 인쇄기계(23만8천 「달러」)등으로 출발한 회사는 한동안 잘 운영돼 나갔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56년부터 『주주가운데 친야적인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정부가 간섭하기시작, 끝내 기증한 인쇄기계를 정부재산으로 계산, 송주식의51%를 점유해버렸다.
결국 사학경영자들은 국영기업체 설립의 산파역만 한 채 군소주주로 눌러 앉고 말았다.
국정교과서회사의 75년말 현재 총주식은 2백34만4천여주. 정부와 산업은행주가 1백84만4천여주로 79%, 63개 학교법인및 재단법인 소유주가 50만여주로 겨우 21%정도다.
농지개혁과 교과서회사투자로 사학측이 받은 손실의 실례는 D학원의「기본 재산대장」 에서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D학원이 농지 개혁때 논밭 87만6천평을 넘겨주고 받은 보상금 (농지증권) 은 벼1만1천5백여섬. 연간수확량 3천8백여섬의 3배였다. 이 증권을 고스란히 교과서 회사에 투자, 현재의 보유주는 1만8천여주, 이익배당금은1백30여만원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는 땅을 그대로 소유했을 때의 연간수익 7천6백여만원(쌀3천8백가마의 현싯가)의 58분의1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해방후 한때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학교의 설립인가 남발상황은 다음과 같은 두가지 실화가 이를 설명해준다.
『어느날 시골청년이 3개의 서류상자를 메고 문교부를 찾아왔다. 상자안에는 사학을 세우기위해 그지방 찬동자의 서명날인「카드」 1만여장이 들어있었다. 이를 본 당국자는 기본재산의 기준미달에도 청년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 어떤의미에서는 당시 왕성했던 교육열을 나타낸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어쨌든 이건 또 약과다.
『어느 섬의 모래사장이 학교법인의 수익용기본재산으로 둔갑, 학교설립인가가 나간 예도 있다』 - 당시 문교부에 근무했던 S씨의 말이다.
학교법인의 기본재산중 그나마 남아있는 것은 임야등 대부분 수익성이 없는 것들. 대학법인의 경우를 예로서 보자.
문교부 자료에 따르면 전국72개 법인의 수익용 기본 재산 중 71%가 토지이며 토지가운데서도 대지나 논·밭·과수원등 수익성이 다소 있는 것은 4.5%에 불과하고 95.5%가 임야나 잡중지로 돼었다.
게다가 학교법인은 비수익성 재산을 수익성재산으로 전환하거나 재산증식도 어렵다.
쓸모없는 임야를 팔기도 어렵고 설사 팔았다 하더라도 판매대금의 50%가량은 법인세와 법인특별 부과세 등으로 떨어져 나간다. 또 요즘같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능력도 기술도 없이 새로운 기업에 손댔다가는 실패 할 우려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E여고의 수산업 등과 같은 성공한 예도 있지만 H고교와 I고교등은 제익회사와 돌수출등에 손댔다가 수 억원의 빚 만지고 말았다.
이때문에 많은 사학이법인전입금 한푼 받지 못한 채 학생들의 공납금에만 의존하고 있는실정. 당국조사로는 각급 사학중 82%가 전적인 공납금 의존교로 나타났다.<오만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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