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제기에 그친 95회 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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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9대 국회 후반3년의 문을 연 제95회 임시국회가 10개 법안과 동의안을 통과시키고 23일 폐회했다. 이번 국회는 여야협의·대정부질문·법률안 심의에 있어 모두 궤도 이탈 없는 안전운행으로 시종했다.
3·1절의 명동성당사건으로 인해 우려되던 강경 발언으로 인한 여야 충돌도 없었으며, 모든 의안이 여야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작년 정기국회 후반 이후 진척되기 시작한 국회운영의 능률화가 상당히 정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여야간의 충돌이 결국 일방통행만을 초래했던 과거를 생각하면 비록 자그나마 야당의 의견이 받아들여진 이번 여야협의 운영방식이 현실적인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앞으로도 여야협의 운영 자세가 우리의정에 더욱 폭넓게 정착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정책의 대안을 제시하는 야당의 자세나 이를 받아들이는 여당의 마음가짐이 모두 좀더 진지하고 겸허해져야 할 것이다.
야당의 대안이 현실과 동떨어질 때 그 수용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으며, 야당의 합리적 요구를 받아들이는 여당의 자세가 인색하면 장기적으로 대화의정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감퇴하겠기 때문이다.
95회 국회에선 짧은 기간에 광범한 문제가 논의되고 처리 된데 비해 국회는 문제만을 제기했을 뿐 처리에까지는 손을 쓰지 못한 인상이다.
명동사건·일본의 견직물수입규제·쇠고기파동·석유시추·물가·교수재임용·서정쇄신·해상방위 등에 걸친 광범한 문제제기는 결국 문제제기로 끝난 것 같다. 정부가 제안한 의안처리의 경우에도 야당의 대안 중 받아들여진 것은 극히 지엽적인 것에 불과하다.
결국 이번 국회에서도 정부제출법안이 철저한 심의와 수정 없이 그대로 통과되는 전철을 되풀이했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행정부가 입법에 깊이 참여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회가 그 고유기능인 입법권의 행사를 소홀히 해선 안될 것이다.
그 한 예로 최고 사형까지를 규정한 새 대마관리법안의 중형조항이 국회에서 무수정 통과된 것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항간에서 뿐 아니라 법안성안 과정에서는 여당이, 국회심의 과정에선 야당이 수정 주장을 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조항이 무수정 통과되지 않을 수 없었다면 그 까닭이 국회심의과정에서 국민에게 소상히 해명되었어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대마사범에 꼭 사형까지를 과해야할 만한 이유가 아직도 잘 설명되지 않고 있다.
어느 관계당국자는 『대마사범에 대한 경고의 의미』라고 했다지만, 형벌 특히 사형을 경고의 한 방편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대마초 흡연풍조는 개인과 사회를 좀먹는 망국풍조로 발본색원되어야 할 일이지만, 이미 현행법에 의한 단속만으로도 상당히 성과를 올린 마당에 사형이란 극형조항이 꼭 새로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처한 현실에서 사형제도의 존치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하더라도 사형을 과할 수 있는 범죄의 범위는 가능한 한 제한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 신중한 입법이 요청되는 대목이다.
이번 국회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우리 국회는 질문만 해 버리고 그 결과를 매듭짓지 않는 습성에 젖어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러한 타성에서 벗어나야겠다. 문제를 많이 제기하기보다는 적으나마 제기된 문제를 깔끔하게 매듭짓고 해결하는 생산적 국회가 되도록 힘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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