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미까제」의 희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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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이마에는 『필사보국』이라 적힌 머리띠, 팔에는 일장기「마크」, 옷은 일본군복, 여기에 『천황폐하 만세』소리만 나면 군국주의 일본의 「심벌」로는 완전무결해진다.
다만 때가 다르다. 시대착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예사로운 일인가보다.
「노벨」문학상의 후보에까지 올랐던 삼도유기부도 「하라끼리」(할복)의 봉건적 의식을 조금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지난번에 유제두를 누른 다음에 윤도는 『대화혼』으로 이겼다고 외쳤다. 이 말을 일본의 「저널리즘」조차 아무렇지 않게 보도했다.
어찌 보면 희화와도 같은 일본의 사회다. 23일 아침 「록히드」수회사건의 배후인물인 아옥의 집에 난데없이 「가미까제」특공기가 떨어졌다.
삼도유기부를 숭배했었다는 조종사는 「포르노」배우였다. 정녕 만화와도 같다.
그러나 평소에 우상화했던 아옥에 대한 절박한 배신감 때문이었다는 풀이도 있는 모양이다.
지금 일본서는 극우세력이 12만명쯤 된다고 보고있다. 그리고 그 총수가 아옥이었다. 적어도 정신적·재정적 구심점의 하나였다.
「록히드」사건이 터지기 전까지의 아옥의 생활은 나무랄데 없었다. 월수는 공칭 50만「엥」에 불과했고, 둘째아들 결혼식 때에도「웨딩·케이크」를 잘라먹지 않고 그대로 고아원에 선사했다.
그만큼 청렴결백하고 애국심에 불타는 인물도 드물다는게 세평이었다.
『첫째로 나라를 위해 피를 흘려라. 둘째로 벗을 위해 눈물을 흘려라. 세째로 가족을 위해 땀을 흘려라… 그리고 월월화수목금금의 정신으로 조국방위를 위해 전진하자.』
몇 해 전인가 이렇게 그는 말 한 적도 있다. 이래서 그에게 심취하여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겠다는 젊은이들이 그의 밑에 운집해 있었다. 그러나 「록히드·스캔들」과 함께 아옥의 허상은 산산조각이 났다. 그는 수10억의 뇌물을 등뒤에서 받아먹어 왔던 것이다.
그뿐이 아니라 사건이 터진 다음의 그의 처신이 그를 따르던 젊은이들에게는 다시없이 추악하게 보였나보다.
그가 젊었을 때 당시의 재무상이 못마땅하다 하여 단도를 보낸 적이 있다. 호신용으로든 할복용으로든 마음대로 쓰라는 쪽지가 여기 붙어 있었다.
『모른다』『안했다』고 병상에서 발뺌하며 어쩔 줄 몰라하는 대신에 깨끗이 할복하기를 은근히 기대했던 사람들도 많았나보다.
특히 그를 따르던 축에 많았다.
그는 신풍기가 떨어질 때 2층에서 1층으로 피신했다고 한다. 만신창이라도 지킬 것이 아직 남아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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