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스타일」시도하는 기성 작가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김=이 달에도 특출한 작품은 눈에 띄지 않았으나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 몇 편이 시선을 끌더군요. 우선 김이연씨의 『슬픈 녀석은 싫어』(한국문학)와 한수산씨의 『비늘』(문학사상)을 들 수 있겠는데 이 두 작품은 젊은 세대의 「모럴」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읍니다. 달리 표현한다면 문학청년성을 띤 소설이랄까, 청춘소설이랄까 그렇게 얘기할 수 있겠지요. 나쁘게 말해 신춘문예「스타일」이라 할 수 있겠지만 기성작가의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홍=그러나 그와 같은「스타일」에 오래 집착하다 보면 사소설에 빠질 위험성도 있을 것 같아요. 김문수씨의 『소설거리』(현대문학)도 작가가 추구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면에서 이야기될 수 있을텐데요. 우선 이 소설은 독백체이면서도 단순한 1인칭 소설이 아니라는 점에 관심이 갑니다. 말하자면 「스테레오·타이프」의 인간만 요구되는 이 사회에서 지식인들의 순응적인 태도를 풍자적으로 암시하고 있는데 전체적인 분위기에는 공감이 가지만 기법의 면에서는 다소 저항을 느끼게 돼요.
김=독백체로서 취할 수 있는 소설의 효과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겠지요. 암시성, 혹은 상징성이라면 유재용씨의 『가발』(현대문학)을 빼놓을 수 없겠군요. 이 소설은 비교적 긴 단편인데 주인공이 감춰둔 가발을 몰래 꺼내 쓰고 새벽거리를 산책하는 것은 가발의 물 신성으로서 현대인의 불안을 상징한 것 같아요.
그러나 새벽에 자기 집에 침입한 도둑과 함께 자기 집을 턴다는 이야기 설정은 이 소설을 우화로 변질시킨 느낌이예요.
차라리 도둑을 등장시키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홍=강호무씨의『화류항사』(문학과 지성)와 문순태씨의 『멋장이들』(월간중앙)은 매우 대조적인 작품들입니다. 우선『화류항사』가 도시의 창녀가 아닌 토착적인, 즉 맨 밑바닥의 창녀를 그리고 있는데 비해 『멋장이들』은 도시의 밑바닥 삽화를 그리고 있읍니다.
대조적이라고 한 뜻은 이러한 배경뿐만 아니라 언어감각도 그렇다는 것인데 강씨의 언어감각이 토착어와 결부되어 전체적으로 끈끈한 느낌을 주는 반면 문씨의 언어감각은 덜 세련된 대로 생동감을 주고 있어요. 다만 도시든 농촌이든 이 시대의 「리얼리티」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질의 작가로 봐도 좋겠지요.
김=강씨·문씨와 동향(호남)의 작가로서 한승원씨의 『참 알 수 없는 일』(한국문학)도 이 달에 발표된 작품가운데 수준작으로 올려놓을 만한 것이었습니다. 시골의 부잣집에서 태어나 갖은 횡포를 부리면서 성장한 주인공이 세파에 시달릴 대로 시달린 끝에 빈털터리로 고향에 돌아온다는 내용인데 작가 나름대로 삶의 깊이를 캐고 있어요. 이 작가는 아직 젊지만 저력도 있고 뚝심도 좋아요.
홍=기본적인 실력을 갖춘 기량 있는 작가지요. 「문학사상」에 연재하고있는 중편 『폐항』도 좋은 작품이더군요. 한씨와는 대조적이기만 김원일씨도 저력 있는 작가중의 한 사람인데 그가 발표한『마음의 죽음』(문학과 지성)은 한 예술가의 좌절과 고통을 그린 작품으로 매우 공들여 쓴 작품이지만 화가가 약혼자의 얼굴에 칼을 던진다는 후반의 이야기 선정은 작위적인 냄새가 짙게 풍겨 무리였던 것 같아요. 전체적으로 긴장감이 없다는 것도 흠으로, 지적돼야겠구요.
김=어떤 제약 때문에 글을 쓰지 못하겠다는 작가들이 많이 있는 듯 싶은데 작가로서 그러한 제약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처음 말씀드린 대로 새로운「스타일」에의 끊임없는 시도가 필요하겠지요. 그렇게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하다보면 자기에게 씌워져있는 제약을 파기할 새로운 방법도 체득할 수 있는 것 아니겠읍니까?
대담: 김윤식<문화평론가> 홍성원<소설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