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비싸진 농용 물건값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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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올해는 몇 년만에 다시 농가 교역조건이 악화되는 해가 될 가능성이 짙어가고 있다.
그것은 농가의 판매가격 지수가 점차 둔화되는 반면 구입가격 지수는 2, 3년 동안 줄곧 오르기만 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만해도 농수산부 통계로는 각종 농산품의 판매가격 지수가 24%나 오른 것으로 되어있으나 농가의 가계비나 자재비도 23·5%나 올라버림으로써 실질적인 교역조건의 개선은거의 이루어진 바가 없었다.
더우기 이들 지수의 산출근거가 되는 각종 판매·구입가격의 개별지수 측정이 가중치의 비현실성 등으로 몇 가지 문제가 없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실제로 지난해 중 농가판매가격의 대중을 이루는 곡물은 26%도 채 못 올랐는데 농가의 지출에서 가장 비중이 큰 비료는 67·3%, 농약은 49·5%나 올랐고 보건위생 등 잡비도 36·2%, 식료품 구입비도 30%나 늘어난 점을 보면 쉽게 짐작되고도 남는다.
이런 상황에서도 농가 교역조건이 유지될 수 있었다는 것은 오히려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 하겠다.
70년대 초반 이른바 고미가 정책이 채택되었던 수년동안 지속적으로 개선 추세를 보였던 경우와 비교하면 최근의 이 같은 교역조건 변화는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변화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는 이런 변화가 반드시 최근의 높은 「인플레」율에서 비롯된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그 보다는 오히려 정부의 농정방향이 점차 60년대 수준으로 퇴색하고 있는데 더 큰 원인이 있지 않나 생각된다.
물론 석유파동 이후의 유례없는 물가고가 농가의 가계비지출 부담까지 예외 없이 가중시킨 것은 분명하다. 또한 「에너지」가격 상승에 파급된 비료·농약 등 각종 영농자재비의 폭등이 농가 교역조건의 악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하게 된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불가괴한 지출 대가는 그의 원가개념을 정당하게 인정받는다면 당연히 판매가격으로 보상되어야 하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농가의 판매가격은 주곡을 포함하여 대부분이 정부가 가격결정에 직·간접으로 개입하고 있기 대문에 결국은 정부가 이를 반영해 줄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지난해의 추곡수매가 결정에서 나타난 것처럼 정부의 가격보장은 매우 소극적이었다.
비록 재정부담의 한계를 내세운 저곡가 불가피론이 제기된 바 있지만 우리는 아직도 농정의 기본은 주곡의 고가격 지지에서부터 찾아져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적어도 농정에 관한한 열 가지의 농가 구입가격 안정보다는 주곡만이라도 판매가격을 보장해주는 일이 훨씬 더 긴요하다는 점을 다시 지적하고 싶다.
양특적자는 어떤 형태로든 해소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그것이 저곡가 정책으로의 후퇴로써만 가능하다는 생각은 옳지 않을 뿐더러 너무 무책임한 생각이기도하다.
지금과 같은 물가 추세대로 간다면 올해의 농가 교역조건은 더욱 나빠질 것은 분명하다. 이를 회피하는 길은 농정이 70년대 초반의 의욕을 되찾아 오직 적극적인 가격지지 정책을 펴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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