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일자세에 국민적 각성 다시할 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개항」요구도 미국 본뜬 것>
최근 어떤 구미계의 두 외국인을 만나는 자리에서 한·일의 국민성을 논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일본은 모방성이 강한 민족이고 한민족은 창조성이 강한 민족임을 천명했다.
문화사적으로 볼 때 일본민족은 남의 문학·문명을 빨리 배우는 소질이 있다. 1백년 전 그들이 우리에게 개항을 강요한 것도 실은 미국의 행동을 모방, 그대로 옮긴 것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 패한 후 다시 「아시아」의 선진으로 서양물질 문명을 빨리 수용하는 것만 봐도 그들이 얼마나 모방성이 강한 민족인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우리 나라는 유·불의 정신문화를 비롯해 창조적 예술을 남에게 알리고 싶어하는 민족성을 가졌다. 이 같은 점은 영국의 사가 「토인비」가 그의 저서 『역사의 연구』에서 「아시아」 문화권을 한족문화권과 한·일 문화권으로 나눈 의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한으로 쓰지 않고 한·일로 썼다는 자체가 한민족의 문화적 창조성을 높이 평가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은반위구 일삼은 일본>
적어도 1876년의 개항 전까지는 우리 문화와 문명이 일본으로 일방통항했음에 틀림없다. 다만 개항이후 일본은 서구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우리로부터의 문화수용이 뜸해 졌을 따름이다.
일본은 이같이 우리 나라와 서구로부터 문화를 전수 받는 은혜를 입었으면서도 그들의 실력이 우리나 서구에 비슷했을 때 거침없이 침략을 행하는 은반위구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과거 임진왜란이 그러했고 최근의 한·일합방이 그러했다. 특히 서구로부터 받아들인 기술로 서구를 향해 일으킨 태평양전쟁은 은반위구의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이익을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신의를 헌신짝 버리듯 하는 것이 그들의 속성이다.

<감탄고토하는 경제동물>
그러나 우리 나라의 겨우는 지나칠이 만큼 신의를 중히 여긴다. 미국의 원조를 받은 여러 나라 중 유일하게 반미구호를 부르지 않은 나라다. 역사적으로도 근세조선에서 명나라가 임진왜란 때 원병해 준 것을 잊지 못해 명이 청에 실세한 다음에도 계속 친명관계의 유지를 고집, 호란을 당한 것은 신의를 중시한 가장 좋은 예 중의 하나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한·일간에는 새로운 경제「이슈」로 생사수입규제문제가 「콜로스업」되고 있는 것 같다. 비록 생사라는 일개 상품의 문제지만 「경제동물」이라는 별명을들을 정도로 상도의를 모르고 감탄고토하는 일본근성의 단면을 드러낸 것이다. 비단 이번에 일어난 생사문제뿐만 아니라 국교정상화이후 해태·돼지·닭 등의 수출을 둘러싸고 비슷한 마찰이 자주 있었다.
일본인과 협상을 해 본 경험자는 알겠지만, 그들은 결코 모든 것을 상대방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상황이 바뀌면 그들의 태도 또한 내거는 구실과 함께 표변한다. 우리는 이 점을 망각해서는 안되고 그들이 말하는 내용의 진의를 항상 파악해야 할 것이다.
「게이오」(경응)대학설립자인 「후꾸자와·유기찌」(추택논길) 같은 일본인 중 덕망가로 평판있는 사람도 「탈아론·멸한론」을 공공연히 주장할 정도이다. 하물며 국익만을 앞세우는 관리나 상공인들에게서 국제도의를 구한다는 것은 연목구어나 다를 바 없다. 현재의 위치에서 일본과 일본인은 안분지족할 줄 알고 동양적 미덕으로 상대방의 약점을 공격하기보다는 감싸줘야할 때다.

<경계와 슬기로 대처해야>
한편 우리 나라의 경우도 대일자세에 국민적 각성이 필요한 때다. 일본이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도 아닌데 지나치게 경제발전을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특히 무역업자와 같은 경제인의 경우, 저들의 속셈을 간파할 수 있도록 정보활동이 활발해야겠다. 아울러 그들과의 상담에서 한국인 업자끼리 경합, 값을 낮추는 등의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하겠다.
일본은 현재 우리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이기 때문에 계속적인 교류는 불가피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국제적 신의가 없는 한, 날카로운 경계와 슬기로 대처해 나가는 국민적 단결이 필요하다. 이선근<동국대총장·한국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