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닫은 신연극의 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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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우리나라 신연극의 전용무대로 40여년의 전통을 지닌 동양극장(대표 김희덕·서울중구충정로1가62)이 많은 연극인들의 아쉬움속에 문을닫게됐다. 찬란한 연극전통을 자랑하던 동양극장은 최근 영화산업의 사양화에 마른 영화관경기의 침체, 현대식시설을 갖춘 신축공연장에 밀려 3류극장으로 전락, 2∼3년전부터 적자운영에 허덕여왔다.
특히 작년부터 영화관객들은 악취가 풍기고 불결한 동양극장을 외면, 입장객이 급격히 줄어 1주일평균 입장객수가 2백∼3백명도 안됐다는것.
극장주인 김씨는 사업이 실패하자 금년2월부터 극장문을 닫아버린채 수표부도를 내고 종적을 감춰버렸다.
대지4백88평에 건평3백73평(2층) 6백48석을갖춘 동양극장은 1958년부터 김씨가 인수. 대부분 국산영화를 상영해 왔다.
동양극장은 일제시대인 1935년11월말(작일우32년은 잘못)한말사교계의 요화였던 배정자의조카 배귀자씨(무용가)과 홍순언씨(평양소재 철도국직영 「야나기·호텔」지배인역임) 부부가 개관했다.
일제의 문화회유정책의하나로 개관된 동양극장은 한국인이 만들고 한국배우만 출연하던 한국민의 가장 사랑을 받던극장이었다.
당시로는 드물게 회전무대를 갖췄고 특히 푸른하늘을 연상시키는 창공벽(창공벽)은 일품이었으며 「스틱」시설·「로비」·분장실·2층특별실을 구비, 1류시설의 연극전용극장이었다.
개관 첫연극은 이운방씨(작고)가 쓴 『국경의밤』으로 전속극단 「청춘좌」「멤버」들이 출연했다.
동양극장전속극단으로는「청춘좌」외에 「호화선」이 있어 주로 지방공연을했다.
동양극장에서 가강 인기를 누렸던 「스타」는 황철·차홍녀「콤비」였으며 이밖에 「토월회」「멤버」인 심영·김선영·이월화·신일선·하기종씨등 많은연기인이 이 극장에서 배출됐다. 가장 「히트」했던 작품은 기생극『사랑에속고돈에울고』(주제가『홍도야 울지마라』·36년작품)등으로 인파가 장사진을 이뤘다. 36년에는 무용가 조택원씨가 첫무용발표회를 갖기도했다.
39년 동양극장주인이던 홍씨부부가 일본으로 건너감에따라 연극에 깊은관심을 가졌던 김태윤씨(납북)가 극장을 인수, 6·25동란때까지 연극무대의 황금시절을 누렸다.
최근 연극계의 일부에서는 쓰러져가는 동양극장을 적극 활용, 연극무대부족으로 허덕이는 연극계의 활로를 열어보자는 움직임을 보이고있으나 시설투자등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마련돼있지 않다.
서울시당국자는 『유능한민간인후원자가 나와 극장을 인수, 시설개수를 해주기를 바라지만 재원이없어 당국의 보조는 힘들다』고 밝혔다.
6·25동란전까지 15년동안 동양극장에 관여했던 이서구씨(극작가)는『연극만을 위해 지었던 동양극장이 그동안 버림을 받아온것은 안타까운일로 정부나 민간인의 도움으로 다시 연극무대로 활용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광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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