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제품과징금은 또 무엇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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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4일부터 동경에서 열리는 한일 섬유실무자회담을 앞두고 일본의 일방적인 수입규제 움직임에 대한 한국민의 분격이 고조되고 있는 이때, 설상가상격으로 일본여당인 자민당은 견제품수입에 대한 과징금징수를 법제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특정견업안정 임시조치법」안으로 알려지고 있는 이 같은 입법구상은 견직물수입에 수입관세를 인상하는 것과 효과가 똑같은 조정금을 부과한다는 것이어서 이 법안이 입법되면 견직물수출국은 수량규제와 관세인상 등으로 2중의 타격을 받게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일본이 이처럼 견제품수입에 강경한 조치를 취하려는 것은 단순히 자국의 잠업보호라는 경제정책적 이유 이외에도 총선거를 앞두고 양업관계자들의 표를 의식한 정치적 포석의 하나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불과 28만2천호 밖에 안 되는 잠업인구표 때문에 잠사수입에 대한 식량규제에 이어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정신에도 위배되는 관세장벽까지 쌓겠다는 것은 국제적으로 즉각적인 보복반응을 일으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게 되리라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들은 불과 4년 전 스스로 미국의 대일직유수입규제에 대해 『자유무역 원칙을 저버린 「에고이즘」』이라고 통박하던 일이 있음을 벌써 잊고 있다는 말인가.
특히 일본의 대한생사류 수입규제는 가장 가까운 인방과의 국제신의를 헌신짝처럼 저버리는 배신행위임을 양식 있는 일본국내인사들까지 지적하고 있는 처지가 아닌가.
작일 본지 보도와 같이 일본측은 지난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거의 10여년 동안 한국의 생사증산을 공식·비공식적으로 간청하다시피한 기록을 남기고 있는 터이다.
그들은 일본국내의 생사수요증가와 수입수요확대 때문에 안정적 수입이 불가피하다 했고, 그래서 이 난제를 한국산 잠사의 증산으로 해결해주기를 간청하여 그 결과로 한국의 적지 않은 농토가 상전으로 전환되고 잠업농가가 급진적으로 증대했던 것이다.
통계상으로도 67년 이후 70년대 초반까지 일본은 생사수입총량의 30∼50%를 한국에 의존하는 국제적 분업「패턴」을 이로써 형성하기에 이르렀었다.
특히 그들은 72년의 제2차 한일민간생사회담 때는 한국의 생사증산을 공식적으로 요청하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10여년에 걸친 이러한 사실상의 국제분업협약 때문에 한국의 양잠산업은 해마다 확대 생산, 지금은 양잠농가가 48만호로 전체농가의 19·4%에까지 이르게 되었으며, 한국측은 구미시장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연간 전체생산량 8천표 중 그 95%를 기꺼이 일본시장에 내놓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인과관계 성립의 경위를 무시, 이제 와서 일방적으로 한국산 생사수입을 규제하겠다는 거조 외에 한걸음 더 나아가 관세장벽까지 쌓겠다는 것이 어찌 선린국가로서의 신의 있는 행동이라 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주식회사 일본」이라는 오명을 듣는 일본 상술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용서할 수 없는 배신적 폭거라 규탄 받아도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상품을 망라한 일본의 총수입고 중 대한수입의존도가 고작 2·3%에 불과한 그들이 그야말로 구우의 일모격인 한국산생사류수입에 이토록 인색한 규제를 강화함으로써 두 나라 교역관계에 중대한 파탄을 자초한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일본이 져야 할 것이다.
국내 잠사업계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범국민적인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벌일 기세를 보이고 있는 점을 볼 때, 정부도 일본측이 끝까지 성의 있는 해결책을 내놓지 않을 경우, 강력한 대응조치를 취하는 것만이 격앙된 국민감정을 가라앉힐 수 있는 길임을 깨닫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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