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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 2035

결혼해도 괜찮을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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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몇 달간 ‘결정장애’를 앓았다. 증상은 결혼 준비의 기본이라는 ‘스드메(웨딩 스튜디오, 웨딩 드레스, 웨딩 메이크업)’부터 시작됐다. “신부님, 가격대별로 5가지 패키지가 있어요.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 고민 끝에 A타입을 선택했다. “A타입도 항목별로 수십 가지 구성이 있어요. 특별히 원하시는 게 있으면 새로 구성도 해 드려요.”

 결혼 준비는 단답형이 아니라 서술형이다. 문항수도 많은 데다 도무지 선택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없다. 여차하면 까먹는 돈은 또 얼마나 큰지. “뭐라도 해놓자”며 일찍이 스위스로 신혼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다. 야간열차를 타고 이동하는 배낭여행이다. 하지만 이내 남자친구가 ‘꽃할배’의 이서진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알아보니 비행기와 호텔 취소 수수료만 100만원이다. 나는 스스로 짐꾼이 되기를 각오했다.

 결혼 5년차인 친구를 만나 이런 고충을 털어놨다. “눈을 감았다 뜨면 결혼식 날이었으면 좋겠어.” 친구가 픽 웃었다. “결혼 생활은 아예 답이 안 나오는 심층 논술형”이란다. 각자 30년 넘게 살면서 쌓아온 주장과 근거가 어찌나 뚜렷한지. 토론조차 힘들다고 했다. 그나마 지금은 “물건을 모르거든 금 보고 사라는 속담이 있다”며 비싼 물건을 권할지언정, 웨딩플래너와 숍매니저라는 진행자가 곁에 있지 않은가.

 결혼해도 괜찮을까. ‘스드메 패키지’를 소화하는 데도 이렇게 애를 먹는데, 집안일·육아로 이어지는 ‘결혼 패키지’를 감당할 수 있을까. 결혼 준비에 드는 돈만도 만만찮은데, 치솟는 부동산 값에 내 집 하나 제대로 장만할 수 있을까. TV 속 추사랑을 보고 “꺄악”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도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여성들의 마음에는 이런 두려움이 있다.

 일본 작가 마스다 미리의 베스트셀러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를 읽었다. ‘결혼을 하지 않아도 괜찮을까’에 대해 한참을 고민하던 주인공 수짱은 일단 “목욕을 하자”고 마음먹는다. 우선 눈앞에 있는,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거다. 요즘 20, 30대 여성들이 열광한다는 이 책의 마지막은 이렇다. “미래를 위해 지금을 너무 묶어둘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아직 지금이니까.”

김혜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