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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마드라스」로 가는 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남 인도의 관문이라 할「마드라스」로 내려가는 차 중에서 어떤 부인과 한 자리에 앉게 되었다. 교양이 있어 보이는 여성이었다. 여행이야기에 꽃을 피우고 있는데 한결같이 하얀 옷을 걸치고 흰「마스크」를 한데다가 빗자루를 든 몇 사람이 어떤 역에서 타는 것이 보였다.
이상한 차림이어서 이 부인에게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자이나」교의 독실한 승려라는 것이다. 불교와 함께 태어난 이 종교는 공의파와 백의파로 나뉘어 있는데 이 하얀 옷차림을 한 사람들은 백의파였다. 특히 하얀 「마스크」를 하고 다니는 것은 이 백의파가 살생을 절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입을 벌릴 때 파리며 딴 벌레들이 입안으로 들어와 죽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리고 먼 순례의 여행에서도 딴 짐은 제쳐놓고 반드시 빗자루를 들고 다니는 것은 길을 걸을 때 개미 따위의 벌레가 밟혀 죽을까봐 걸음을 걸을 때 자세히 살피면서 벌레를 쓸기 위해서라고 한다. 필자가 그전 「슈바이처」박사를 「아프리카」로 찾았을 때 모기 한 마리도 죽이지 않고 방안에서 쫓아내는 것을 보았지만 「자이나」교의 살생엄금은 「슈바이처」박사의 경우보다 더한 것 같았다.
이 부인은 자기는「힌두」교도지만 인도에는 여전히 「이슬람」교도들이 남아 있을 뿐 아니라 별의별 종교를 믿는 사람이 많다면서 자기 나라는 종교의 보고라고 자랑했다. 이같이 인도는 다신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카스트」(종성제도)와도 같이 사고방식이 어떤 계층을 이루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부인은 자기 나라를 자화자찬하며 늘어놓는데 이것은 거의 이 나라 사람의 공통된 민족적인 긍지다. 한 때 찬란한 문화를 지닌 이 나라가 지금은 빈궁 속에 헤맨다고 해서 황폐한 것이 아니며 여전히 고대의 철학과 「인더스」문명을 지녔던 생명력이 뛰고 있는 것을 이 부인에게서도 느꼈다.
이 부인은 도중에서 내렸는데 나는 이렇듯 훌륭한 여성을 만난 것이 여신의 은총이라고 생각하며 「마드라스」로 향했다. 인도는 워낙 땅덩어리가 넓은 데다가 종족이 많고 언어가 복잡하며 남인도는「아리안」족이 사는 북인도와는 달리 이 나라의 원주민인 「드라비다」족이 살고 있는 만큼 성족의 분포가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드라스」시에 내리니「캘커타」나 「푸리」보다는 훨씬 깨끗해 보였다. 이 나라의 세째 가는 큰 도시로서 남인도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시내에는 「포르투갈」과 영국의 식민지였을 때 세워진 사원이며 옛 건물들이 많다. 특히 영국의 동인도회사의 본거지가 「캘커타」로 옮기기까지는 이 도시에 있었던 만큼 영국적인 색채가 매우 짙어 보였다.
지금 상하의 남인도는 찌는 듯이 더워 특히 여성들은 살을 더 드러내는 것 같다.
「사리」를 걸친 젊은 여성들이 간혹 배꼽을 내놓고 다니는 것은 매혹적이다. 나는 이 도시에 오자마자 먼저 몸을 씻을 양으로「마드라스」의 자랑거리인 6「마일」이나 되는 긴 「마리나비치」로 나갔다. 해안에는 열대지방특유의 원색의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인도-사라센」양식의 「마드라스」대학을 비롯한 건물들이 보였다.
좀 한적한 곳이 보이기에 해수욕을 하기 위해 모래 위에 옷을 벗어 놓고는 바닷물에 뛰어들었다. 하도 바닷물이 아름다와 저만큼 바다로 향하여 자꾸만 헤엄쳐 갔다.
얼마쯤 헤엄쳐 갔을 때였다.
바닷가에서 웬 사람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손짓을 한다. 무슨 영문인가 하고 해안으로 돌아가니 나를 부르던 그 사람은 대뜸『외국인 같으신데 이 바다가 어딘 줄 알고 함부로 해수욕을 합니까? 여긴 큰 상어가 많아서 헤엄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답니다』라고 타일러 주었다. 살인어「피라냐」가 득실거리는 「아마존」강에서도 오래도록 헤엄친 경험은 있지만 상어에 물리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나에게 이렇듯 우정을 베풀어준 이 중년신사는 뜻밖에 동방의 벗이 찾아왔다고 자기 집으로 가자고 끌어당겼다.
지금까지 많은 인도사람의 신세를 졌는데 여기서도 좋은 유지를 만나 이런 대접을 받게되니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으랴.
「논어」의 서두에 나오는『벗이 먼데서 왔으니 얼마나 즐거우뇨…』라는 귀절은 어쩌면 낯선 나라 사람에 대한 한까지도 포괄하는 말이 아닌가 생각되어 이 인도신사에게 공자의 이 말씀을 되뇌었더니 그는「논어」의 이 말이 자기나라의 우정관 보다 뛰어난 그 무엇을 갖고 있다고 찬양했다.
인도 사람들은 자기나라 사람들끼리도 물론 그렇지만 낯선 나라 사람에 대해서도 여간 우정이 돈독하지가 않다. 사회의 계급인「카스트」에 대한 관념은 심하지만 오랜 종교 속에서 받은 「에토스」(덕성) 때문인지 연인애가 넘친다.
인도의 중년신사를 통하여 인도야말로 「우정의 권화」란 것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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