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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백성호 기자의 현문우답

수도원에서 만난 도법 스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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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백성호 기자 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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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그저께 경북 왜관의 성 베네딕도 수도원에 갔습니다. 왜관역에서 걸어서 불과 5분 거리입니다. 이유가 있더군요. 언제든 짐을 싸서 북한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랍니다. 베네딕도 수도원은 원래 북간도와 함경남도 원산에서 활동했습니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많은 이들이 순교하거나 수용소에서 고초를 당했습니다. 마지못해 피란을 와서 잠시 정착한 곳이 왜관이었습니다. 언제든 돌아가려고 일부러 역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전 60년’이 됐습니다. 지금 수도원에는 원산을 기억하는 외국인 노수사가 딱 두 명 있다고 합니다. 베네딕도 수도원에도 현대사의 가슴 아픈 상처가 박혀 있더군요.

 도법 스님을 거기서 만났습니다. ‘화쟁 코리아 100일 순례’를 하고 있는 그가 30여 명 순례단과 함께 수도원에 들어섰습니다. 순례단은 수도원 성당 옆 뜰에서 빙 둘러앉아 절을 하더군요. 한 번씩 절을 할 때마다 녹음기에서 메시지가 흘러나왔습니다. “항상 역사의 진실을 기억하지만 역사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을 생각하며 절을 올립니다.” 그렇게 1배. “사회 문제의 책임이 양심이 따르지 않는 자신, 종교인, 지식인에게 있음을 직시하며 절을 올립니다.” 또 1배. 그런 식으로 100개의 메시지를 따라서 100배를 하더군요. 그 모든 메시지와 기도는 한 곳을 향하더군요. ‘화쟁(和諍)’.

 이날 아침 도법 스님은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찾았습니다. 순례단은 거기서도 100배를 했습니다. 그리고 낙동강을 따라서 6시간을 걷다가 수도원으로 왔습니다. 도법 스님은 걸으면서 자신에게 물었답니다. ‘과거에는 산업화가 시대적 열망이었다. 그 다음에는 민주화가 시대적 열망이었다. 그럼 지금은 뭔가.’ 이 물음에 스님은 “화쟁”이라는 답을 길어올렸습니다. 곳곳에서 갈라지고, 찢어지고, 다투고 있는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시대적 열망이 다름 아닌 ‘화쟁’이라고 말입니다.

 제주에서 출발한 도법 스님은 25일째 순례 중입니다. 거제 포로수용소를 찾아 좌익과 우익으로부터 당한 이들, 모두를 위한 합동위령제도 올렸습니다. 참전용사회도 오고, 재향군인회도 왔습니다. 거제 성당의 신부들도 왔습니다. 이들은 시국미사 때 성당 안과 밖에서 심각하게 대치하던 사람들입니다. “어? 저 신부님도 왔네” “아니, 저 사람도 왔네”라며 상대를 알아보고 처음으로 대화를 나누었답니다. 거기서 다들 “싸우니까 우리도 힘들다. 대화로 풀자”고 털어놓았답니다. 송전탑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밀양도 찾았습니다. 한전 사업본부 측도 만나고, 송전탑반대대책위 사람들도 만났습니다. 그들 역시 “정말 대화로 풀었으면 좋겠다”고 했답니다. 도법 스님은 바닥 현장으로 갈수록 정확한 마음이 읽힌다고 했습니다. 그게 현장의 진정한 바람이라고 말입니다. 보수와 진보라는 추상적 개념의 거대한 고래 싸움 때문에 현장의 새우들만 오히려 등 터지고 있다고 지적하더군요.

 도법 스님은 순례단과 함께 수도원의 저녁 미사에도 참석했습니다. 제단 위에는 십자가가 걸려 있었습니다. 파르라니 머리 깎은 스님이 그 아래서 묵상을 했습니다. 미사가 끝나자 인영균 신부는 “많이 걸으셨죠? 일용할 양식부터 급하다”며 수도원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수사들이 직접 담근 김치와 직접 지은 밥으로 말입니다. 도법 스님은 계란 프라이와 북어국은 절집에선 안 나오는 메뉴인데 외식하는 기분이라며 웃었습니다. 그리고 수도원에서 묵었습니다.

 저는 이날 화해의 악수를 봤습니다. 나와 다른 이념, 나와 다른 자연관, 나와 다른 종교를 향해 건네는 화쟁의 악수 말입니다. 1400년 전 원효 대사는 그 결과물을 ‘일심(一心)’이라고 불렀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가 애타게 찾는 마음입니다.

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