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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백성호의 현문우답

정의구현사제단과 성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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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백성호 기자 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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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성당의 제단 옆에 큼직한 현수막이 걸려 있습니다. ‘이명박 구속과 박근혜 사퇴 촉구 시국미사’. 지난주 인천에서 열린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 풍경입니다. 계속 논란입니다. 사제단은 정치적 발언을 해도 되나, 해선 안 되나. 김수환 추기경은 군사정부 시절에 민주화 발언으로 돌직구를 날리기도 했습니다.

 저는 사제가 인간과 세상에 대해 성역 없이 발언할 수 있다고 봅니다. 때로는 그게 현실 정치의 영역일 때도 있습니다. 누가 그걸 막을 수 있을까요. 또 여기까지는 정치가 맞다, 여기서부터는 정치가 아니라고 누가 단정할 수 있을까요.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직자가 행하는 모든 행위는 정치적인 행위”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자꾸만 “사제단이 정치에 대해서 발언할 수 있느냐, 없느냐?”만 논란의 쟁점이 됩니다. 사제단은 인간의 삶과 세상에 대해서 발언할 수 있습니다. 그건 대한민국 구성원으로서 갖는 그들의 권리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정의구현사제단이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있는가’는 처음부터 논란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럼 도마 위에 올라야 할 쟁점은 뭘까요. 그건 ‘사제단이 누구의 관점에서 발언하느냐’입니다. 정치적 발언을 할 때 사람들은 저마다 눈이 있습니다. 학생은 학생의 눈, 주부는 주부의 눈이 있습니다. 좌파는 진보적 관점, 우파는 보수적 관점에서 합니다. 그럼 사제들은 어떡해야 할까요. 사제단의 이름으로 정치적 목소리를 낼 때 우리 사회가 기대하는 그들의 관점은 대체 뭘까요.

 그건 야당의 눈도, 여당의 눈도 아니라고 봅니다. 좌파의 관점도, 보수의 관점도 아닙니다. 저는 그게 ‘예수의 관점’이라고 봅니다. 상·하·좌·우 어느 진영에도 물들지 않은 채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눈 말입니다. 그래야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나오니까요. 김수환 추기경은 그 눈을 좇았습니다. 그래서 다들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진보든, 보수든 그의 장례 미사 때 눈물을 흘렸습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국가 기관의 선거 개입에 따른 국정원 개혁’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게 좌파와 우파를 가르는 문제일까요. 우리 사회가 굴러가야 하는 원칙에 맞는가, 맞지 않는가의 문제가 아닐까요. 저는 여기까지 ‘파란불’이라고 봅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입니다. 사제단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시국미사 때마다 “대통령 퇴진”을 외칩니다. 그때부터 ‘빨간불’이 켜집니다.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종교인의 정치적 발언인지, 정치인의 정치적 발언인지 헛갈립니다. 사제단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발언 수위를 더 높인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갸우뚱했던 고개는 더 기울어집니다. 그런 전술은 종교인의 몫이 아니라 닳고 닳은 여의도 정치인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천주교 내부에서도 적지 않은 신부들이 “정의구현사제단이 민주당의 2중대인가?”라고 묻습니다. 사제단의 주장이 늘 특정 진영의 주장과 맥을 같이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건 사제단이 ‘반쪽의 예수’를 좇기 때문이 아닐까요. 온전한 예수를 좇는 이들은 다릅니다. 어느 한쪽 진영에 발을 담그지 않습니다. 여당을 향해서도, 야당을 향해서도 쓴소리를 냅니다. 박근혜 정부를 향해서도, 노무현 정부를 향해서도 비판의 화살을 겨눕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천주교 진보 진영의 좌장 격인 강우일 주교는 “천주교회의 시국선언 운동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단정했습니다. 묻고 싶습니다. 혹여 그게 ‘내가 만든 신념, 내가 만든 성령’은 아닌가요. 정의구현사제단이 ‘예수의 이름’ ‘성령의 이름’으로 정치적 목소리를 내려면 먼저 진영의 늪에서 발을 빼야 하지 않을까요.  

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