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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황보 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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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가수 황보는 “여러분 눈에 안 띄어도 전 늘 뭔가 하고 있다”며 생활인으 로 열심히 산다고 소식을 전했다. [최효정 기자]

나는 녹슬어 없어지기보다,

닳아 없어지기를 원하노라

- 조지 휫필드(1714~70)의 ‘일기’

깨달음은 화장실에서 왔습니다. 7년 전 지방 가는 길에 휴게소 화장실에서 이 짧은 시를 보았습니다. 순간 머릿속의 생각과 모든 동작을 멈추었습니다. 볼일 보다 말고 뭔가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별일이지요. 화장실 문짝에 눈높이로 붙어 있어 슬그머니 눈으로 들어온 이 문구가 지금까지 들어왔던 수많은 잔소리와 채찍질보다 나를 무섭게 흔들었으니까요.

 이 글을 보는 순간 내 서재에 꽂혀 있는 예쁜 나무 연필이 생각났습니다. 해외에 나갔다가 그냥 예뻐서 기념으로 사왔던 것이지요. 연필은 써야 하는 것인데 정작 쓰이지 않고 인테리어용으로 꽂혀 있었습니다. ‘나는 그 연필과 뭐가 다른가? 연필은 알록달록 예뻐서 눈요기라도 된다지만 나는….’

 할 일이 생기면 그나마 일을 하던 저는 누군가 사용하길 바라며 꽂혀 있는 연필처럼 생각돼 순간 부끄러웠습니다. 그렇게 살다 녹슬어 없어지지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이대로 버려지기 싫었습니다. 닳고 닳아져서 어느 주인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기억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의 모토는 ‘뭐라도 하자’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면 “세상에 태어나 숨만 쉬고 간다면 아깝지 않느냐, 뭐라도 하라”며 나의 깨달음을 전파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는 연예인보다 생활인으로 뭐라도 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방송에서 안 보이니 독자들께선 잘 안 보이시겠지만 저는 지금 뭔가 하고 있습니다. 황보 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