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 논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정부는 현행 상법을 크게 고치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개정의 이유로는 현행 상법이 만들어진지 이미 10여년이 지나 현실 경제와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아진 때문이라 한다.
이런 주장의 근거는 최근 크게 문제되었던 부도 기업 정리 과정에서 주식회사 법규정이 약간 비탄력적이었다는 경험을 들고 있는 듯하다.
이번에 개정하려는 주요 방향도 주식회사법에 비중을 두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투자자 보호라는 명분을 크게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현행 상법이 채택된 이후 지금까지 이 법의 기반이 되는 사회적·경제적 사정이 크게 달라진 점은 인정된다. 특히 이 법이 포괄하는 법역이 그 실질과 형식에서 매우 다양하다는 특수성 때문에 사회적 관행의 변화나 경제 활동의 변천과 되도록 유리되지 않아야 한다는 논리는 타당하다.
그러나 이런 여러가지 명분과 이유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법개정은 너무 서두르지 말고 좀더 신중한 검토를 가할 것을 권하고 싶다.
무엇보다도 상법은 특별법이면서도 상사에 관한 일반법의 성격을 띠고 있으므로 빈번하게 고치지 않는 것이 원칙적으로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상법전의 개정은 오랜 기간의 연구와 충분한 준비를 거치는 조심성을 잃지 않고 있으며, 지엽적인 문제는 특별법의 제정으로 보완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굳이 이 법을 고쳐야 한다면 지금처럼 단 시일 안에 처리할 생각을 말고, 관계전문가들로 하여금 장기간 검토시켜 보다 완벽한 상법 체계로 정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번 개정의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는 부실 기업 문제만 해도 매우 심각한 것만은 사실이다. 주식회사의 반을 넘는 1만5천여 기업이 정리 대상의 부실 기업이라는 현실은 주식회사의 정리를 보다 쉽게 바꿀 필요성을 제기한다.
그러나 현재 거론되고 있는 해산 의제 제도가 채택 될 경우 이해 관계자의 권익은 보호되겠지만 발전하는 경제의 활력을 제약할 우려도 없지 않다. 따라서 해산의 유예 기간은 신중히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
주식회사의 자본 최저 한도를 법으로 정하는 문제도 부실 회사의 난립 방지에는 기여할 것이나, 중소자본가들이 주식회사의 이점을 이용할 수 없게 되며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지도 모른다.
이 두가지 문제는 현행 상법이 자유기업 주의에 역점을 두고 있는 영미법계통, 특히 미국형의 입법 예를 따르고 있어 우리로서는 약간 진보적인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 해도 기업의 자유로운 창의를 고무시키는 입법 정신만은 되도록 보존시키는 방향이, 옳을 것이다.
감사의 권한을 업무 감사에까지 확대해야한다는 주장도 일리는 있으나 이 경우 구상 법으로의 퇴보를 의미할 뿐이다.
따라서 감사 제도는 현행대로 두되, 지금도 가능한 검사인 제도 등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부작용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주식 공개가 점차 확대되면, 투자 대중을 보호하는 일이 중요해질 것이므로 주주 출자의 양도제 채택은 바람직한 일이다.
결론적으로, 되풀이 지적해야 할 것은 기업 활동의 기둥이라 할 상법 전 같은 법의 개정은 준비 기간을 오래 갖고 깊은 검토를 거치는 것이 옳으며, 일시적인 문젯점 때문에 이를 성급하게 손질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개정이 꼭 필요한 경우라도 현행 상법의 전진적인 기본 입법 정신을 되도록 살리는 것이 옳을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