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세계에 관심 큰 서구 연극|국제 연극협 한국 본부 강연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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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60년대 후반부터 서구연극은 제3세계의 연극에 각별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1950년대부터는 부조리극과 서사극이, 60년대부터는 비언어적 실험극이 차례로 밀어닥쳐 최근의 서구연극은 그 흐름이 제3세계, 특히 동양의 연극과 일치하는 요소를 이제 많이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극예술 협회 (ITI) 한국 본부는 『오늘의 서구 연극-그 조류와 수용의 문제』라는 제목으로 강연회 (11·12일 서울 미국 문화원)를 가졌다. 『부조리 연극의 현대적 의미』를 주제로 한 여석기 교수 (고대)의 강연과 김정옥 교수 (중대)가 제기한 「서구 연극의 수용과 한국 연극』이라는 제목의 『우리의 서양 연극 수용 자세』 문제를 발췌 소개한다.

<부조리 연극의 현대적 의미><여석기·고대 교수>
l950년 이후 서구에서 생겨난 부조리 연극은 현대성을 지니고 있다. 부조리라는 용어 자체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서구 문명에 대한 일종의 도전 또는 붕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이 의미가 없다는데 중점을 두고 있는 부조리극은 따라서 형이상학적인 고뇌를 낳고 초시간적인 보편성을 추구한다.
50년대 이전의 사실극 (리얼리즘 극)이 합리성을 바탕으로 현실 세계 인간 관계를 그려왔던데 반해 부조리극은 절대 현실 세계를 극화하지 않는다.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인식 위에서 있기 때문에 부조리극은 이제까지의 서구 연극과 다른 몇개의 철칙을 지닌다. 첫째, 합리적인 극 전개를 불신하고 둘째, 「리얼리즘」이 이제껏 의존해 왔던 심리주의적인 극작술을 부정하며 세째, 비극이라든가 희극에 대한 재래의 정의를 파괴하는 것이다.
첫째와 둘째의 철칙은 부조리극의 기수격인 「베케트」나 「이오네스코」·「핀터」 등의 작품에서 쉽사리 엿볼 수 있다. 동일한 인식의 바탕에서 극을 쓰면서 실존주의자들인 「사르트르」나 「카뮈」와 달리 「베케트」나 「이오네스크」는 앞뒤가 일치되는 대화·논리성이 일관되어 흐르고 있는 성격 묘사를 거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조리극은 새로운 특징적인 극작술을 만들어냈다. 「폴로트」 대신 상황을, 언어 대신 구체적 사물을 혹은 언어 자체의 사물 (오브제)화 등을 만든 것이다.
연극 대사가 종래와 달리 비문학적이면서 또, 새로운 시적 효과를 거두고 있고 연극이 거의 곡예적일 이만큼 「아크로버티」하다든가 주술적인 동작과 유사하다는 점등도 부조리극의 새 특성들이다.

<서구 연극의 수용과 한국 연극><김정옥·중대 교수>
1908년 원각사서 이인직의 『은세계』로 막을 연 한국 연극은 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일본을 통하지 않고 직접 서구 연극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사실극·고전극과 함께 부조리극·전위극이 소개되어 연극사는 다양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신극사 70년에 서구 연극을 제대로 수용해 왔는가에는 논란이 적지 않다. 우선 서구 연극을 제대로 수용했는가, 번역극을 흉내만 내지는 않았는가의 문제와 창작극은 서구 형식을 취하기만하고 아직 습작기를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아닐까의 문제다.
서구 연극을 수용하는 자세에는 회의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의 두가지가 있을 수 있다. 도대체 서구 연극의 수용으로 얻을 점이 있느냐하는 회의적 자세는 우리 연극 유산이 어차피 갑오경장 이후 질식할 운명에 있었던 때문에 잃을 것 조차 없다는 관점에서 생각할 필요없는 자세이다.
문제는 어떤 자세를 갖고 긍정적으로 서구 연극을 수용하느냐는데 있다. 60년대 이후 서구 연극의 새 경향은 새삼 우리 연극 유산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들이 추구하는 문화성과 언어의 전제에 대한 반발, 극장과 무대의 규격화에 대한 반발, 관객과 연기자 사이의 새관계 형성 등은 바로 우리 연극 유산이 지닌 요소기 때문이다.
서구 연극과 우리 연극 유산이 전혀 이질적인 것이 아니라고 판단된 이제는 서구 연극과 우리 연극 유산의 결합 혹은 접목을 통한 연극 창조성에 초점이 맞춰져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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