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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한국인 에이즈 환자 돌보는 벽안의 수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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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 ‘보건의 날’ 기념식에서 앨리스 수녀가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부터 훈장을 받고 있다. 에이즈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는 그는 자신의 얼굴이 정면에서 촬영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보건의 날' 기념식이 열린 7일 오전 경기도 정부 과천청사 대강당. 단상에 오른 유공자들 가운데 자그마한 체구의 백인 수녀가 특히 참석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지난 33년간 집창촌 여성과 에이즈 환자 등 소외 계층을 위해 일해온 공로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는 코신스 매리 앨리스(64.한국이름 고명은) 수녀였다.

하지만 그는 축하 박수와 연신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가 불안한 듯 파란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시상식이 끝난 후에도 입을 꾹 다문 채 언론을 피해 다녔다. 에이즈 환자 쉼터를 운영해온 지 어언 10년. 시설의 존재조차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조심해온 세월이 축하의 순간에도 그를 부담스럽게 만든 것이다.

아일랜드 출신의 앨리스 수녀는 1971년 성골롬반 외방선교수녀회의 일원으로 한국에 왔다. 간호사와 조산사 자격증을 갖고 있던 그는 목포의 성골롬반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면서 지방의 열악한 출산 환경을 개선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의 관심은 집창촌의 성매매 여성들에게 이어졌다. 88년 일명 미아리 텍사스촌으로 불리는 서울시 하월곡동에 '사마리아의 집'을 열어 성매매 여성들을 돌봤다. 그러던 중 에이즈에 감염돼 절망의 나날을 보내던 한 성매매 여성을 만났다. 그 여성과의 만남은 앨리스 수녀에게 신의 새로운 계시였다. 그 여성을 자신의 아파트에 데려가 함께 기거하며 돌보던 앨리스 수녀는 직장과 가족을 잃고 죽음의 공포와 홀로 싸우던 환자들을 하나 둘씩 돌보기 시작했다. 97년 국내 최초의 에이즈 감염인 지원시설 '작은빛 공동체'는 그렇게 세워졌다.

"장의사들도 수습하기를 꺼리는 에이즈 환자의 시신을 직접 염습과 화장까지 하십니다."

대한에이즈예방협회의 최영길 부장은 "성관계를 갖지 않는 한 실제로 감염될 가능성은 거의 없는데도 대중의 막연한 공포 때문에 국내 에이즈 환자들은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며 "에이즈 환자를 공개적으로 돌볼 수 있게 되는 날 수녀님도 입을 여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행사에서 훈장을 받은 사람은 다음과 같다.

▶국민훈장 모란장=홍창권 중앙대의료원 교수.박효길 대한의사협회 보험부회장▶동백장=정승환 한국의약품수출협회 회장.정성원 한국전립선관리협회 회장▶목련장=최종일씨(이용사).정재규 대한치과협회 회장▶석류장=고 이상호씨(한의사)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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