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여인과 자유의 여신이 나란히|미 독립2백주에 선물할 『우정의 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오는 7월4일 미국의 건국2백주년을 맞아 우리나라는 『우정의 종』을 조성, 선물하기로 했다.
통일신라의 깊은 불심과 전통적인 한국미를 간직한 에밀레종(국보 제29호)을 1천2백년만에 재현, 『우정의 종』이란 이름으로 선물한다. 이 종은 정부가 약 3억원의 예산을 들여 주종작업을 한창 진행 중이다. 혈맹의 선린을 상징하는 『우정의 종』은 한국교포들이 가장 많이 살고있으며 동양과 미국을 잇는 관문이기도한 「로스앤젤레스」에 종루와 함께 세워진다.
종은 오는 5월초까지 완성돼 선편으로 수송하고 종루는 「로스앤젤레스」시 당국의 주선으로 장소가 결정되는 대로 한국정부가 필요한 건축재와 건설기술자를 보내 세운다. 정부가 선물로 종을 선정한 것은 미국 같은 부국에 보낼 선물로는 물질적인 것보다 종 같은 문화적인 기념물이 보다 어울린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문공부 문화재관리국이 실무를 맡아 서울 범종사(대표 김철오)에 제작을 의뢰한 이 종의 주종작업은 현재 종을 구워낼 도가니 설치공사를 거의 끝낸 단계.
종의 모양과 크기는 동양 제1의 거종인 에밀레종(높이3.33m, 지름2.27m, 두께23cm, 무게20t)을 그대로 재현시킨다. 종의 조각은 서울대 미대 조각가 김세중 학장이 맡았고 명문은 박종화씨 등 문학계 원로인사들이 공동으로 지었다. 종의 무늬는 나라선물이라는 성격 때문에 에밀레종과 약간 다르게 설계되었다.
화문대에는 보상화와 연꽃무늬대신 무궁화 무늬를 돌리고 가운데에는 양국의 우의를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과 한복차림의 한국 여인상이 나란히 조각된다. 이 밖에 한국의 상징인 태극과 미국의 영광을 상징하는 월계수, 평화를 뜻하는 비둘기 등 4폭의 그림도 새겨 넣는다.
그러나 종 위의 용두나 종을 치는 당좌부분, 표면에 튀어나온 윤곽부분 등은 에밀레종의 원형을 그대로 살릴 계획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쓰게될 한글 명문은 현재 문안이 완성돼있다.
종에 새겨질 글자수는 한글과 영어가 각각 5백자씩 모두 1천자로 에밀레종의 명문자수와 비슷하다.
『대한민국 국민은 미국독립 2백주년을 축하하며 1세기에 걸친 우의를 기념하기 위하여 미국국민에게 이 종을 보낸다….』 이같이 시작되는 명문은 피로써 맺어진 양국간의 우의를 영원히 이어나가자는 내용으로 돼있다.
서울 강남구 양재동189 김동저씨(42)를 비롯한 20여명의 인부들이 에밀레종을 재현한다는 긍지 속에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재래식 용광로를 「오일·버너」용광로로 바꾸고 설계도에 따를 종을 종틀공사를 70%정도 진행시켰다.
수틀(외형)과 암틀(내형)로 나누어 철판으로 심을 대고 흙을 붙여 만드는 종틀짜기가 끝나면 3월15일께부터는 본격적인 주종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작업현장에는 지하5m의 땅을 파고 20t의 무게를 움직일 수 있는 기중기를 시설하는가 하면 1천kg의 쇳물을 끓일 수 있는 도가니를 20개나 설치해 자못 웅장한「스케일」을 연상할 수 있게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