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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내분의 국제전화위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기독교도와 회교도간의 무력충돌이 상호간의 점령지 확보와 중앙정부의 해체 위기를 몰고 옴에 따라 「레바논」은 국토분단의 최악의 사태에 직면했다.
여기에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참전이 노골화하고, 「시리아」「이스라엘」 의 개입이 우려되어 중동에는 새로운 국제전의 불씨가 타오르게 됐다.
사태가 이 정도까지 약화된 이면에는 중동특유의 복잡한 민족문제가 얽혀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레바논」사태의 근인은 물론 작년 4월에 있었던 기독교도와 회교도간의 총격사건이었다.
「팔레스타인」난민들이 타고 가던「트럭」을 기독교도들이 기습한 것이다.
이 습격사건은 반세기동안 내연하던 회교도들의 종교적·사회적 불만을 일시에 폭발시켰다.
그러나 보다 뿌리깊은 원인은 「레바논」이라는 국가의 성립과정 자체에 잠재해 있었다고 봐야한다.
「레바논」땅은 본래「시리아」의 일부였는데 이를 프랑스가 위임 통치하다가 1943년, 중동일각에 기독교 우세의 아랍국가를 심어놓기 위해 따로 독립시킨 것이다.
기독교도의 항구적 지배권을 제도화하기 위해 독립전인 1926년의 국민헌장은 행정부와 의회의 권력배분에 있어 기독교도와 회교도의 비율을 6대5로 명문화했다. 독립 후 30년이 지나도록 이러한 문제점은 가시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동안 회교도의 인구는 점차 불어났고 여기에 3만 명의 「팔레스타인」난민이 가세하게되자 이들의 대등에의 요구는 점차 정치화하기 시작했다.
회교도들이 좌익적인 팔레스타인·게릴라의 암약으로 정예화하자 기독교도들은 우익적인 「팔랑지스트」당을 앞세워 이에 맞섰다.
이들의 내란은 지난 14일 「팔랑지스트」당이 「베이루트」북부 「도바에」에 있는 난민촌을 점령하고 이어서 「팔레스타인·게릴라」의 좌파 PFLP의 거점인 「다르엘 사티르」 난민 「캠프」를 공격하면서부터 국토분단의 극한상황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내란으로 인한 사망자수는 9천명에 달하고 있다하며 한 때 번영을 자랑하던 「베이루트」시가는 잇단 전화와 해외 도피사태로 인해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2만 명의 PLO주력부대가 참전하여 「레바논」 정부를 제압한다든지 또는 「시리아」가 개입하여「이스라엘」의 참전을 불러온다면 사태는 제5차 중동전으로 폭발될 기세다.
「아랍」연맹의 「리아드」사무국장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아랍」수뇌회의소집을 호소했다. 그러나 지난 20여 회의 휴전협정은 번번이 깨어지고 말았다.
근본문제는 양파의 법적·사회적 관계를 현실화하고 두 사병집단의 무장을 해제하는 한편 외부의 간섭을 배제해야만 해결될 것이다.
「레바논」의 동족상잔은 특히 양파에 대한 동구권과 무기상인들의 경쟁적인 지원으로 조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극의 종식을 위해서는 우선 기독교나 회교도 우파와 외부세력이 모두 위정을 버리고 공존의 자세를 갖춰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을 유도하는 데에는 「시리아」와 「레바논」 정부의 상호협력에 바탕한 중재노력이 필수적이다. 중동정치의 고질은 상대방을 전멸시켜버리겠다는 식의 격정주의와 보복주의인 만큼 「시리아」 「레바논」정부가 협력해서 중도적 타협의 실마리를 찾아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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