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정명훈씨 전격 사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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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정명훈(鄭明勳.50)씨가 1996년부터 맡아온 로마 국립 산타 체칠리아 아카데미아 오케스트라(이하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 수석 지휘자를 지난 18일 전격 사임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1996년부터 이 교향악단에서 지휘봉을 잡아온 정씨가 오는 2004년말로 예정된 계약 만료를 20개월 앞둔 시점에 사표를 제출한 것이어서 다소 의외다.

정씨가 산타 체칠리아를 떠나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단원들과의 불화 때문이 아니다. 1999년부터 산타 체칠리아 아카데미의 총감독 대행으로 있는 작곡가 루치아노 베리오(78)와 빚은 의견 충돌 때문이다.

사태의 발단은 지난해 12월 21일 로마 파르코 델라 무지카(2천7백56석) 개관 기념공연에서 정씨가 연주하겠다고 제안한 두 개의 앙코르곡을 베리오가 거부한 데서 시작됐다.

정씨는 베토벤의'합창 환상곡',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등 예고된 프로그램에 이어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중의'히브리 노예들의 합창'과 로시니의 '윌리엄 텔 서곡'등 애국적 내용의 음악을 앙코르로 연주하려고 했다.

공연에 참석한 카를로 아젤리오 시암피 이탈리아 대통령 등 정치 지도자들에게 존경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정씨의 제의를 선뜻 받아들였다. 하지만 베리오는 앙코르곡을 연주한다는 것은 산타 체칠리아의 오랜 전통을 깨는 것이라며 이를 거절, 정씨의 자존심에 적잖은 상처를 입혔다.

정씨의 국내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CMI는 "임기 만료는 내년 5월까지이며 정씨가 재계약할 의사가 없음을 미리 알려준 것 뿐"이라며 "다른 유럽 교향악단에서 좋은 제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현지에선 베리오가 산타 체칠리아의 차기 수석 지휘자로 런던 태생으로 미국서 공부한 이탈리아계 안토니오 파파노(런던 로열오페라하우스 음악감독)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정씨는 현재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수석 지휘자, 도쿄 필하모닉 특별 예술고문을 맡고 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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